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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월출산(807m)

雪松 2010. 5. 14. 20:31

  영암 월출산(807m)

 

* 일시 : 2007년 5월 28일  화요일

* 대전청솔산악회 땅끝기맥 산행중에서
* 코스 : 천황사 ->구름다리->천황봉 ->남근바위 ->바람재->베틀굴과 구정봉길 ->향로봉 ->미왕재 ->도갑사.

 

백두대간상의 영취산(장수군 1075.6m)에서부터 갈라져 나온 금호남정맥이

장안산과 팔공산, 성수산등을 거쳐 주화산(600m)에서 다시 금호남정맥과 호남정맥과 두갈래로 갈라진다.

 

이곳에서 갈라진 호남정맥은 남쪽으로 내장산과 무등산을 지나  전남 화순군과 장흥군의 경계를 이루는 바람재에서 호남정맥에서 분리하여 남쪽으로 또다시 작은 가지인 땅끝기맥 줄기를 만든다.

 

이곳 바람재에서 가지를 친 땅끝기맥은 영암과 강진의 경계인곳에서 거대한 월출산을 솟구쳐 일으킨 다음 해남으로 내달아 주작산, 두륜산, 달마산을 거쳐 땅 끝에 있는 땅끝마을에 이르러서 바다속으로 그 맥을 접는다.  

 

대전 청솔 산악회에서 지난 4월 17일부터 야심차게 기획하고 진행하던 땅끝기맥 연속종주는

땅끝마을에서 시작하여 달마산과 대둔산. 두륜산. 그리고  주작산(과 덕룡산)을거쳐 월출산을 향하던 중,

월출산에도 오기전에 참여인원이 적어져 이번 월출산행을 끝으로 어쩔 수 없이 땅끝기맥 종주는 불발로 끝나 중도하차하게 된다.

 

마지막까지 다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기맥 전구간의 명산만이라도 밟아볼 수 있음을 다행이라고 위안할 수 밖에......

오늘 산행들머리도 땅끝기맥길을 가려면 불티재에서 시작해야 하지만 땅끝기맥길과 관계없는 천황사지입구에서 11시 10분 월출산 산행을 시작한다.

 

  

 

월출산조각공원과 월출산 원경

 

월출산(月出山)!!  
달이 제일 먼저 뜬다는 이산의 이름을 삼국시대에는 월나산(月奈山)이라 하였고, 고려시대에는 월생산(月生山)이라 하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월출산(月出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시대에 따라 산의 이름은 바뀌어도 달 월(月) 자만은 변함 없이 들어가 있었던 것을 보면 한반도 최남단이고 바다와 인접해 있어서 달이 가장 먼저 달이 떠 오른다 믿었고, 망망대해처럼 거칠 것 없는 넓은 벌판에 우뚝 솟은 월출산에서 달이 뜨는 모습을 신령스럽게 생각하였는지 모른다.

 

이 고장의 이름도 신령스럽게 영암(靈巖)이다. 전설에 의하면, 월출산의 구정봉 아래에 움직이는 바위가 세 개 있었다고 하는데, 그 바위의 기운을 받아 산 아래 고장에서 훌륭한 인물이 날 것이라는 말이 전해오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된 중국 사람들이 몰래 숨어 들어와서 그 바위를 굴러서 떨어뜨려 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그 중 바위 하나가 도로 제자리로 기어올라가서 지금도 그 자리에 동석(動石)으로 남아 있다. 그리하여 신령스러운 바위가 있는 고장이라 해서 영암이라는 지명이 생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설로 전해오는 그바위가 어느바위인지는 알 수가 없다.

 

 

 

월출산은 전라남도의 한 중앙인 영암군과 강진군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지만, 영암의 월출산이라 부를뿐 강진의 월출산이라 부르는이는 없다. 그이유는 월출산을 오르는 들머리인 산문이 대부분 영암쪽에 위치하고 있고, 영암에서 월출산을 볼 때 하늘을 향해 불꽃처럼 타오르는듯한 월출산의 진면목을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천황사 주차장에서 조각공원 옆길을 지나 20분정도 올라가면 바람골로 가는 갈림길인 작은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접어들면 천황사(天皇寺)로 가는 길이다.

 

 천황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 대사가 창건하고, 헌강왕 때 도선 국사가 중창했다는 천년고찰이었다는데,

지난 2001년 3월에 화재로 모두 소실되어 다시 복원불사 중에 있다고 한다.

 

건물이 없는 빈절터 앞을 통과하여 돌계단으로 이어진 가파른 길을 40분 정도 올라가면, 팔각정 직전에 길이 다시 두 가닥으로 갈라진다. 직진하면 팔각정으로 해서 구름다리로 가고, 왼편 계단 길은 바람폭포로 연결되는 길이다. 

 른편 팔각정 가는 길로 들어서면 거대한 화강암 슬래브를 형성하고 있는 시루봉이 나타나고, 그 뒤로 장군봉의 웅장한 모습이 보인다.

 

 

 

구름다리 정면에 보이는 시루봉-시루를 엎어 놓은 듯 보이나요?

 

 

 

 

월출산 구름다리-매봉과 사자봉을 잇는 지상120m의 높이에 길이 54m의 규모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긴 구름다리인 이곳 월출산의 시루봉과 매봉을 연결하는 출렁다리는, 예전에 지상에서 120m의 높이에 길이 52m 폭이 0.6m로 설치되었었으나, 지금의 구름다리는 2006년 길이를 54m로 2m를 더 늘리고 폭을 1m로 확장하여 양방향통행이 가능하도록 다시 설치하였다고 한다.

 

 

 

 

▲ (구름다리에서 내려보는) 영암뜰

 

 

 

▲ 사자봉 정상.

 

다리를 건너 사자봉(408m)에 오르는 길 또한 만만치 않다.
원래는 깎아지른 절벽으로 오를 수 없는곳이었으나 수직에 가까운 가파른 인공 구조물인 철사다리를 설치하였다.
그렇게 가파른 철 사다리 300 계단을 올라서면 커다란 암봉인 사자봉 정상에 오른다.
사자봉은 하늘을 향해 서 있는 사자의 모습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사자봉을 내려와 다시 천황봉으로 오르는 길은 사자봉 왼편으로 급경사의 인공 철사다리를 지나서 거의 바닥까지 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한없이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한다. 애써 올라간 길을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하는데 천황봉도 오르기 전에 벌써 진이 빠져 버린다. 월출산의 높이가 807m라고 생각하여 이쯤이야하고 가볍게 생각하였다가는 이쯤에서 그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점이 오늘산행 중에 가장 힘들었던 곳으로 기억이 되며, 이후에도 계속 가파른 오름길이 반복된다.

 

 

 

 

깃대봉 남쪽 경사면.

 

 

 

월출산 천황봉 전경

 

가파른 길을 일단 올라서면 힘들었던 만큼 시원하게 전망이 트인다. 북동쪽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암릉과, 남쪽으로 경포대 계곡의 암릉 또한 장관이며, 뒤쪽으로는 방금 지나온 사자봉과 시루봉등 사방으로 펼쳐진 암봉들의 모습이 참으로 환상적이다.

 

 

 

 

불티재로 이어지는 땅끝기맥의 아름다운 능선.

 

 

 

 

통천문.

 

 잠시 완만해진 등산로를 따라가다보면 경포대(鏡布臺)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경포대삼거리'를 지나고, 거기서 조금 더 가면 천황사에서 바람골로 해서 올라오는 계단 길과도 만나는 '통천문 삼거리'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 100여미터쯤 더 올라가면 하늘을 오르는 관문이라는 통천문(通天門)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 설치된 팻말에 보면 천황봉이 100m 남았다고 쓰여 있으나, 실제로 걸어가보면 이 팻말의 표시가 잘못된 것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이곳에서 월출산 정상인 천황봉까지는 통천문을 지나서 약간 아래로 내려간다음 다시 가파른 길을 200여 미터쯤 올라가야 한다.

 

 

 

 

천황봉정상.

오후 1시 40분 천황봉 정상이다. 
정상에는 백여명이 앉아서 쉬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암반으로 되어 있다.
정상의 암반 위에 서면, 서쪽으로 영산강하구와 서해바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끝지점에 목포시내의 풍광이 가물가물하다.


남쪽으로는 우리나라 제일이라는 강진·영암의 갯벌과 멀리 남쪽으로 구불구불 산줄기를 따라가면 대둔산과 두륜산도 보이고,
북쪽으로는 영암시가지와  광활한 나주평야를 지나서 저 멀리 광주 시가지와 무등산이 까마득히 보인다.
그야말로 일망무제의 거침없는 조망이 월출산 정상인 천황봉정상 사방으로 펼쳐지는 멋진 곳이다.


비록 807m의 높이를 가진 월출산이지만 이곳 월출산 정상에 서보면,
이곳 월출산에서의 조망이 우리나라 어느 명산에서의 조망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다.

 

 

 

 

 

 

▲ 불티재로 이어지는 땅끝기맥 능선 .

 

 

 

천황봉정상에서의 풍광-구정봉

 

 

 

삼장법사 바위.

 

 

 

 

   

 

▲ 남근석의 앞면(좌)과 뒷면(우).

 

 

 

 

 

▲ 구정봉의 우측 사면.

 

 

  

▲ 구정봉에서의 풍광-지나온 천황봉.

 

 

   

 

베틀굴,
베틀굴이란 임진왜란때 이근처 여인네들이 왜구의 난을 피해 이곳 굴속에서 베를 짰다하여 부쳐진 이름이라하며,
금수굴(金水窟)이라는 다른 이름처럼 우리나라 최고의 음굴로 알려져 있다.


굴속 깊은 곳에는 항상 음수가 차있어 음굴 또는 음혈이라한다. 또한 생긴 모양이 마치 여성의 국부와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이 음굴의 입구는 천황봉아래 기묘하게도 남성의 성기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남근석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이 주변엔 만삭바위, 여인바위, 연인바위 등 여자와 관련된 이름을 가진 바위들이 많이 있다.

 

  

 

구정봉에서 바라본 향로봉.

 

 

 

▲ 구정봉

 -넓은 바위 위에9개의 웅덩이가 있어 구정봉이라 부른다하며,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9마리의 용이 살었다는데.....  

 

 

 

▲ 구정봉 정상에서...

구정봉

베틀굴에서 위로 올라가서 또 하나의 통천문인 좁은 바위틈새를 비집고 올라가면 구정봉(738m) 정상에 이른다. 구정봉 정상의 바위에는 9개의 웅덩이가 패여 있는데 이 웅덩이는 암반이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삭아서 가마솥처럼 움푹 파인 웅덩이가 생겼다고 한다.

 

이는 바위 표면의 오목한 부분에 물이 고이면 화학반응이 진행되어 바위에 포함된 운모와 장석이 분해되고, 겨울이면 거기에 고인 물이 얼어 붕괴작용을 촉진시킴으로써 생기는 풍화혈(風化穴)이라고도 하고 또는 가마솥바위라고도 한다고 하는데 화강암 지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한다.

 

 

 

 

 

구정봉(좌)과 천황봉(우).

 

 

 

 

 

 

미왕재와 억새군락지.

 

 

 

 

미왕재.

 

 

 

▲ 미왕재 삼거리-도갑사로 가는길.

 

 

 

용화교.

 

미왕재에서 서쪽으로 도갑사향하여 50여분 내려오다 보면 길좌측으로 로 거북등에 큰비석을 세워 놓은 도선수미비(道詵守眉碑)의 비각이 있고, 그 옆으로 부도 밭이 보인다. 도선수미비란 도갑사를 창건한 도선 국사와 중건한 수미 대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라고 한다.

 

다시 넓어진 길을 따라 100m 정도 내려오면 새로 놓은 수려한 형태의 아치형 용화교가 있고, 그 오른편 언덕 위쪽에 미륵전이 있다. 이 미륵전 안에는 석조여래좌상(보물 제89호)이 봉안되어 있다. 그리고 용화교를 건너면 바로 도갑사이다.

 

 

 

 

신축중인 도갑사(道岬寺) 대웅전.

 

도갑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로 도선국사실록 · 옥룡사도선국사본비명에 의하면 신라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세조 3년 세조가 신미스님에게 시주하여 수미와 함께 중창하기 시작해 성종 4에 완공했다고 한다.
지금의 도갑사는 6·25전쟁 때 소실되었던 것을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지금 도갑사에는 중창불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도갑사에서 아래로 내려오다 보면 도선국사의 출생지인 구림리(鳩林里--鳩: 비둘기구)에 이르게 되는데 이곳에는 도선국사의 출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도선국사의 어머니가 처녀시절 골짜기에서 빨래를 하다가 물에 떠내려오는 참외를 먹고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잉태하여, 아이를 낳아 몰래 숲에 버렸는데 하늘에서 비둘기들이 내려와 아이를 보살피고 있는지라 이를 신기하게 여겨 아이를 문수사 주지에게 맡겨 기르도록 하였다고 한다.

 

훗날 그 아이가 우리나라 불교역사를 찬란하게 꽃피울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던 도선으로서 중국에 유학하여 선종과 풍수지리를 공부하고 돌아와서 자기가 태어나고 자랐던 문수사 터에 지금의 도갑사를 세웠다. 그리고 버려진 도선을 비둘기가 보살폈다고 해서 그 지방을 구림리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도갑사 일주문

 

 

*오후 4시 20분 도갑사 주차장에서 5시간 10분의  산행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