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명산 **/충청도권

계룡산 남부능선.

雪松 2010. 5. 27. 06:48

  계룡산 남부능선/향적산, 함지봉

 

 *일시 : 2007년 1월 14일 일요일

 *누구와? : 나홀로 놀며쉬며 ~~~

 *코스 : 청송약수터(엄사리)->맨재삼거리 ->향적산->윗산명재->365.5봉->함지봉->도곡리

 

 

 

 

 ▲ 오늘 걸어왔던 길

 

 

[산행기]

계룡산은 해발 845m의 산으로 공주시와 논산시, 계룡시의 경계에 위치하고 일부분은 대전시에도 편입되어 있다.

1968년 12월 31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계룡산의 최고봉인 천황봉은 통제구역으로 맘대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고,

연천봉, 관음봉, 삼불봉,장군봉등 다양한 등산로와 갑사, 신원사등 대부분의 볼거리는 대부분 공주시의 땅에 들어 있다.

 

하지만, 논산시와 계룡시의 경계에 위치한 향적산은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 졌지만,

향적산에서 연산면 관동리로 이어지는 남부능선은 멋진 조망과 풍광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일반인에게는 아직 덜 알려진 곳이다.

 

오늘은 내가 사는 고장 엄사리 청송약수터 입구에서 싸리재를 거쳐 향적산과 그남쪽능선을 가보고자 한다.

산행의 시작은 계룡시 대표적인 웰빙등산로인 청송약수터 입구에서 시작한다.

청송약수터 입구에서 싸릿재를 거쳐 향적산으로의 길은 계룡시민의 웰빙 등산코스이다.

싸릿재에서 상월면과 계룡시그리고 계룡산 정상을 가장 잘볼 수 있는 조망바위를 거쳐 향적산으로 향한다.

 

 

 

 ▲ 엄사리약수터와 금남정맥갈림길

 

 

 

 ▲ 제1헬기장

 

 

 

 ▲ 싸리재/봄이면 싸리꽃이 장괸이다.

 

 

 

  ▲ 맨재 조망바위에서의 조망/금강대학 뒤로 상월면 대명리 일원.

 

 

 

 ▲ 맨재와 향적산 중간에 있는 누룩바위.

 

 

 

 ▲ 향적산에서바라본 계룡산 원경

 

해발 575m의 향적산정상은 일망무제의 거침없는 조망이 펼쳐지는 곳이다.

북으로 계룡산의 정상인 천황봉을 바로 아래에서 올려다 볼 수 있고, 동으로는 계룡시와 대전시가지도 조망된다.

동에서 남으로 눈길을 돌리면 식장산, 서대산, 대둔산, 운장산등의 마루금이 길게 하늘금을 긋는다.

또한 남으로 신라와 백제가 격전을 펼쳤던 황산벌과 서쪽으로 상월쪽의 드넓은 평야가 지평선의 끝까지 이어지는 곳이다.

 

   

 

 ▲ 향적산 정상(575m)-뒷 배경 산이 계룡산

 

향적산 정상은 거대한 하나의 암봉으로 되어 있다.

계룡산 정상에서 북에서 남으로 남부능선이 이어지고 그 중심에 불쑥 솟아 오른 산이 향적산이다.

산의 서쪽으로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아래로 상월면 대명리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국립지리원에서 발행되는 지도에는 이곳에서 남으로 약1.5~2km를 내려간 지점의 436.5봉을 국사봉으로 표기하였지만

이곳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곳 향적봉의 지명을 국사봉으로 부르고 있다.(향적봉=국사봉)

 

 

 

 ▲ 향적산 정상(575m)의 풍광.

 

향적산이란 이름의 유래는 (종교인)들이 향을 피워 쌓인 산이라고 한다.

그만큼 기도인들이나 무속인들이 많이 찾아와 향을 사른다는 얘기다.

산정상에는 넓은 바위가 펼쳐지는데 정상의 한가운데에 한변의 길이가 3미터쯤되는 정사각형 울안에 

높이가 2미터쯤되는 시멘트로 만든 사각의 천지창운비와, 서쪽으로 회색으로된 1.6미터의 사각 화강석 기둥의"오행비"가 있다.

 

천지창운비의 동쪽면에는 천계황지(天鷄黃池), 서쪽면에는 불(佛), 남쪽면에는 남두육성(南斗六星), 북쪽면으로는 북두칠성(北斗七星)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고, 이와는 별도로 오행비가의 서면에는 화(火), 남면에는 취(聚/모일 취),북면에는 일(一), 동면에는 오(五)자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울타리를 이루고 있는 네귀퉁이 주춧돌 모양을 한 사각의 돌기둥에도 원.형.이. 정(元.亨.利.貞)의 한글자씩이 새겨져 있다.

또한 그주위를 여덟개의 돌이  둥그렁게 감싸고 있다.

 

 

 

 ▲ 향적산 정상에서 어느무속인의 기도의식.

 

"계룡산맥은 있다"의 저자 "이길구"씨는 이책에서 비의 유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이비석은 오래전 평양에서 이곳으로 이주한 조씨 할머니가 황해도의 묘향산과 구월산에 산재한 단군 성조의 얼이 이곳으로 옮겨 왔다며 매일 국사봉에서 기도를 하며 신격화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후 조씨 할머니는 8.15광복절과 6.25 전쟁을  정확히 예언하는등으로 명성을 얻어 전국 각지에서 굴지의 정치인이나 재계인사들이 드나들게 되고 돈도 많이 벌었다고 한다.

 

1948년 조씨 할머니가 세상을 뜨면서 그의 며느리 손씨부인이 시어머니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이비를 세웠다고 알려지는데 이 비에 새겨진 내용은 한반도가 천년이상 동방예의지국으로 유지되도록하는 단군성조의 깊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만 알려질 뿐이고,

내용에 대해서 명확하게 풀이한 사람은 없는 듯하다는 것이다.

 

 

 

 ▲ 향적산 남쪽으로의 능선/오늘 가야할 길.

 

 

 

 ▲ 향적산 정상(575m)의 풍광./바위밑에서 어느 산악인들의 시산제가 진행중이다.

 

 

 

 ▲ 향적산 정상(575m)의 풍광.

 

 

 

 ▲  상여바위.

 

 

 

 ▲ 상여바위에서 본 엄사리 전경/뒤로 서대산이 보인다.

 

 

 

 ▲ 도곡리전경(멀리 대둔산의 마루금이 보인다.)

 

 

 

 향적산(좌)과 상여바위(우)

 

**상여바위의 전설**
향적산(국사봉) 정상에서 남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상여를 따가라는 듯한 모습의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행상 바위라고한다.
고려 말엽 한 선비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낙향하여 농사를 짓고 살았다.

이 선비에게는 아들 셋이 있었는데 모두가 총명하였지만 벼슬길에 나가지 말라고 가르쳤다.


어느날이었다.

계룡산에 산다는 한 스님이 찾아와 아들을을 가르쳐 보겠다고 하여 조선의 관리로 키우지 않는다는 약속하에 데리고 갔다.

세아들은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러나 이들은 아버지의 말씀에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삼형제는 과거에 응시하여 급제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선비는「이제 두 임금을 섬기게 되었구나!」하고는 자결하였다.

아들들이 통곡하는 가운데 상여는 장지로 향했다.

상여가 산능선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먹구름이 일더니 천둥번개가 내려쳐 상여와 그 아들들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그후 그 자리에는 상여 모습의 바위와 아들들이 뒤따르는 듯한 바위가 생겨났다.

래서 이바위를 「행상바위」또는 상여바위」라 부른다고 한다. [퍼온글]

 

 

 

 ▲ 아랫산 명재고개마루 위에 신축된 정자

 

  

 

 ▲ 계룡산과 도곡리의 조망.

 

 

 

 ▲ 향적산 능선의 산길1.

 

 

 

 ▲ 향적산 능선의 산길2.

 

 

 

 ▲ 백석리와 논산뜰.

 

 

 

  ▲ 향적산 능선 산길3.

 

 

  

 ▲ 함지봉/365.6봉(고사리가 많다.)

 

 

 

 ▲ 함지봉정상(386.5m) 삼각점.

 

15시 10분, 함지봉 정상이다. 남부능선의 산길은 연산면 관동리까지 이어지나

돌아가는 교통편을 고려하여 도곡리로 하산하여 산행을 종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