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觀自在菩薩 行心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無智 亦無得 以無所得故 菩提薩陀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가碍 無가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뇩多羅三먁三菩提 故知 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故說 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揭諦 揭諦 婆羅揭諦 婆羅僧揭諦 菩提娑婆訶(3번)
***반야심경의 구조***
1.사분(四分)구조
첫째, 반야의 주된 뜻을 세우는 부분
["관자재보살"에서 "도일체고액"]
지혜로써 저 언덕을 건너가는 이치로 살펴보니 일체의 현상이 공하다는 것을 밝히고, 그래서 일체의 괴로움을 해탈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둘째, 그릇된 인식을 깨뜨리고 반야의 공관으로 비춰보는 부분
["사리자 색불이공"에서"무지역무득"]
모든 현상과 가치와 방편을 지혜의 공도리(空道理)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물질현상은 공이며, 공이 또한 일체현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공성(空性)은 일체에 가득차 있어서 육근(六根), 육진(六塵), 육식(六識), 십이인연(十二因緣), 사제법(四諦法)까지 텅 비어 공한 것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공한 도리는 아무 얻을 바가 없는 무소득(無所得)의 경지까지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지혜의 공관으로 일체 현상을 비춰본 결과로써 나타나는 것을 설한 부분
["이무소득고"에서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일체의 현상은 지혜의 눈으로 보면 공한 것임은 앞에서 모두 설명했습니다. 이 부분은 거기서 나타나는 경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마음에 아무 걸림이 없이 자유로우며 마침내 열반에 이르러 성불을 이루는 대목입니다.
넷째, 전체 경의 결론 부분
["고지 반야바라밀다"에서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결론에서는 반야의 공관이야말로 궁극의 진리에 도달하는 깨달음의 경지를 규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정적인 극찬 구로 끝을 맺는 것입니다.
2. 현설(顯說)과 밀설(密說)
1)현설은 맨 처음의 "관자재보살"에서 끝부분의 "즉설주왈"까지가 이 부분에 해당됩니다.
[ 내용을 그대로 드러내서 나타낸 부분 ] (ㄱ)총설(總說): 맨 처음의 "관자재보살"에서부터 "도일체고액"까지 반야심경의 주된 안목을 드러낸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경이 담고 있는 전체적인 뜻을 밝힌 부분. 즉 전체적인 요점을 드러내는 것
(ㄴ)별설(別說): "사리자"에서부터 끝 부분의 "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까지 총설의 큰 뜻을 낱낱이 분별해서 나타낸 부분을 말합니다. 즉, 별설에서는 구체적인 비유를 들어 조목조목 이치를 따지고 논리를 전개해 나가는 것
총설에서 이미 그 주제를 다 드러내 놓고 별설에서는 구체적인 항목을 들어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총설에서 관자재보살로 하여금 반야를 이루게 하고, 별설에서는 사리자를 내세워 반야에 대해 하나 하나 분별해서 공의 이치를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2)밀설(密說)은 맨 마지막 구절인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의 주문이 이 부분에 해당됩니다. [ 내 용을 숨겨서 비밀스럽게 전하는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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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지혜는 참으로 위대한 것.
제2장 몸과 마음은 텅 빈것.
제3장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다. 1.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은 모두 한덩어리 2. 모든 것은 언제나 그대로다. 3. 몸과 마음은 분리될 수 있다. 4. 인간의 구성 요소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5. 인식 작용이란 본래 없는 것. 6. 마음 먹는 순간이 시작이다. 7. 해결할 수 없는 고통이란 없다. 8. 꿈을 깨는 순간 사라진다.
제4장. 반야는 이렇게 나타난다. 1. 꿈을 깨면 완전한 자유는 저절로 온다. 2. 진실되어 헛되지 않다. 3. 너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제1장 지혜는 참으로 위대한 것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큰 지혜로써 저 언덕을 건너가는 도리를 밝힌 중심 되는 가르침'
"마하"(Maha)는'크다(大), 많다(多)'라는 뜻으로 어떤 한계나 제한이 없는 무한대의 크기를 말합니다.
"반야"는 한 마디로 깨달음의 지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반야"는 인생과 우주의 참다운 실상을 깨닫는 일이며,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며, 해탈을 성취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래서 "반야"를 얻은 사람은 성불하여 부처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라밀다"는 “도피안 (到彼岸,)”이니 '저 언덕을 건너간다'는 뜻입니다. 저 언덕이란 바로 지혜의 열쇠로서 문제가 해결된 상태를 말합니다.“도피안”은 궁극적으로 지혜의 눈을 뜨는 것이며, 모든 문제가 해결된 상태를 말합니다. 도피안, 곧 "바라 밀다"는 결국 꿈을 깨고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것이며, 자신의 실상을 올바로 관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편안함과 안락함이 항상 깃든 곳입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꿈꾸는 극락인 것입니다.
"심경"은 '핵심 되는 경전'이란 뜻입니다. 전체 반야부의 경전 중에서 심장과 같이 핵심적인 진수만을 요약한 것이 바로 “반야심경”이란 말입니다.
제2장 몸과 마음은 텅 빈 것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觀自在菩薩 行心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재보살"은 관세음보살의 다른 이름이며 중생들의 괴로운 마음을 그 직관지(直觀智)로 투시하는 보살 입니다. 또 관세음보살은 부처님의 자비가 인격화된 분입니다.
"행심반야바라밀다시"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반야"는 깊은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공의 실상을 꿰뚫어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라밀다"는 경의 제목에서 살펴보았듯이 도피안, 즉 '저 언덕을 건너간다'는 뜻입니다.
"행심 반야 바라밀다시"를 좀 더 자세히 풀어보면 '깊은 지혜로써 저 언덕을 건너가는 도리를 실천할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곧 깊은 지혜로써 문제가 해결된 상태를 뜻합니다.
"조견오온개공"은 '오온이 모두 공한 것으로 비춰본다'는 뜻입니다.
"조견"의 뜻을 좀 더 선명히 번역하면 '밝히 본다' 또는 '저 먼 곳으로부터 내려다본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오온"의 뜻은 '다섯 가지 쌓임'이란 말로 색온, 수온, 상온, 행온, 식온의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구성요소를 일컫는 말로, 쉽게 풀이하면 '몸(색온)과 마음(수온, 상온, 행온, 식온)'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 다섯 가지 작용 때문에 인간으로 구성되는 것입니다.
色蘊은 인간의 육신을 위시해서, 눈에 보이는 모든 물질로 스스로 변화하고 다른 것을 장애하는 물체를 말합니다. 색온의 본래 의미는 '무너진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물질의 특성은 언젠가는 없어져 버릴 것이며, 인간의 육신 또한 지(地),수(水),화(火), 풍(風)의 사대(四大)로 흩어져 사라지는 것 입니다. 受蘊은 괴롭다 즐겁다, 좋다 나쁘다, 달다 쓰다등의 감각을 느끼는 일차적인 마음의 감수작용인 것입니다.
想蘊은 외부로부터의 사물을 마음 속에 받아들이고 그것을 상상해보는 마음의 요소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싫은 것은 배척하는 등의 마음작용을 상온이라 합니다. 상온은 일종의 지각(知覺)작용을 말합니다. 느낌이나 감각의 인상을 머리 속에서 정리하는 표상(表象) 작용을 일컫는 것입니다.
行蘊은 인연으로 생겨나서 시간적으로 변하는 마음의 작용을 말합니다. 즉, 앞에서 받아들인 마음의 작용이 계속 이어지는 상태를 행온이라 합니다. 행온은 분별한 감정을 생각으로 굴려서 마음의 행위를 계속 이어나가는 의지와 행동작용을 말합니다. 또한 잠재적이고 무의식적인 충동력을 행온이라 합니다.
識蘊은 의식하고 분별해서 아는 마음의 인식작용을 말합니다. 또한 식온은 모든 인식의 주체가 되는 마음 의 작용을 이르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인식을 한꺼번에 일컫는 것이 식온 입니다.
개공: "개공"은 '텅 비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오온" 그 자체가 그대로"공"이며 진리라는 입장입니다. "공"이라고 해서 아무것도 없이 텅빈것은 아닙 니다. 그렇다고 해서 있는 것은 더욱 아닌 것입니다. 유(有)와 무(無)를 초월한 존재의 실상이 바로"공" 입니다.
"조견오온개공" 즉, '몸과 마음을 텅 빈 것으로 비춰본다'는 것은 현상적으로는 나라고 하는 존재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은 자아(自我)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존재를 한 꺼풀 벗겨놓고 보면 몸과 마음이 텅 비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몸과 마음을 텅 빈 것으로 바라보는 지혜가 생겨날 때 삶은 더욱 발전되는 것입니다.
"도일체고액"의 뜻은 '일체의 괴로움을 건너간다'는 말입니다. 일체의 괴로움을 건너간다는 말은 결국 모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상태를 뜻합니다."조견 오온 개공"의 결과가 "도 일체 고액"입니다.
"도"라는 말은'건넌다‘는 뜻으로 여기서"도"란 괴로움의 세계에서 즐거움의 세계로 건너가는 도피안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결국"도"의 의미는 일체의 문제가 해결된 상태)
"일체"라는 말은 어떤 일을 막론하고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고액"을 현대적 의미로 해석하면 바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말속에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고액"은 넘고 또 넘어야할 거대한산과 같으며, 건너고 또 건너야 할 엄청난 강입니다.
우리의 슬픔이나 기쁨, 미움이나 성냄 등 일상사에서 일어나는 자질구레한 감정들도 인연에 의해 잠시 일어난 것에 불과합니다. 그것의 실체는 텅 비어서 없는 것입니다. 한 순간 감정을 만나면 영원히 있는 것처럼 착각하여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볼 때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은 바로 불교의 목적이며, 우리 인생의 길잡이인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불교의 진수를 깨닫는 것이며, 불교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가 됩니다. 그 나머지는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에 대한 부연 설명이라고 해도 될 만큼 이 구절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제 3장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다
1.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은 모두 한 덩어리
사리자 색불이공 공즉시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여, 색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않다. 색은 곧 공이고 공은 곧 색이다. 수.상.행.식도 또한 이와 같다
"사리자"는 부처님의 십대 제자 중에서 직관지(直觀智)가 가장 뛰어난 지혜가 제일 높은 제자로 관자재보살이 반야바라밀을 실천하는 주체자라면 "사리자"는 반야바라밀에 대한 설법을 듣는 사람입니다.
"색불이공 공불이색"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색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색"은 오온 가운데서 첫 번째에 해당됩니다. 이는 곧 육신에 대한 바른 견해가 우선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우리의 몸과 텅 빈 것은 둘이 아니란 하나로 이해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몸이든 바깥 현상계이든 모두가 인연에 의하여 거짓 화합하여 잠깐 있는 듯이 보이는 까닭에 고정 불변하는 실체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본질상으로 볼 때 텅 비어 없는 것입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색불이공 공불이색"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뜻은'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다'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현상인 색과 본질인 공에 대한 그 체험적 결과를 설명하는 구절입 니다. 색과 공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은 인생과 우주를 더 넓게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수상행식 역부여시"는 느낌과 생각과 의지작용과 의식도, 그와 같이 실체가 없다'는 뜻입 니다. "수상행식"은 오온 가운데 정신적인 네 가지 양식에 해당됩니다. 우리의 육신을 위시해서 정신작용 또한 텅 빈 것이며, 텅 빈 것 또한 마음의 작용인 것입니다.
2. 모든 것은 언제나 그대로다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사리자여!, 이 모든 법의 공한 모양은 생기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은 것이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은 것이며, 불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은 것이다.
"제법"이란 광물, 식물, 생물, 무생물을 비롯하여 인간까지를 포함한 이 현상계의 모든 존재를 말합니다. "제법"의 본질이 곧 "공상"입니다. 즉 "제법"은 공한 모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이것은 곧 '생도 아니고 멸도 아니며, 더러움도 아니고 깨끗함도 아니며, 더함도 아니고 덜함도 아니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불생불멸"의 의미를 새겨보면, 현상계의 모든 존재는 본질에 있어서 생성과 소멸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곧 모든 현상은 생할 수도 있고, 멸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이면에 숨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본래 공이기 때문입니다. 곧 "불생불멸"은 "역생역멸 (亦生亦滅)"과도 통하는 말입니다 질량은 완전히 없앨 수 없다. 어떤 물체라도 그 근원은 알 수 없다. 완전히 새로운 물체는 만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불교의 "공상"과 잘 들어맞는 이론입니다."제법"의 공한 모양이 "불생불멸"인 것을 과학이 증명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몸과 마음은 분리될 수 있다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이러한 까닭에 공에는 색이 없으며 수.상.행.식도 없다.
"오온", 즉 색.수.상.행.식이 공하기 때문에 색.수.상.행.식은 없는 것입니다. “색”은 곧 몸이며, 수.상.행.식은 정신작용을 말합니다. 그래서 색.수.상.행.식은 우리의 몸과 마음이 됩니다.
4. 인간의 구성 요소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안. 이. 비. 설. 신. 의도 없으며, 색. 성. 향. 미. 촉. 법. 도 없다”
육근(六根)과 육경(六境)에 대한 부정.(십이처) 육근:"안. 이. 비. 설. 신. 의"여섯 가지 주관적인 인식 작용을 말합니다. 육경:"색. 성. 향. 미. 촉. 법"여섯 가지 객관적인 인식 대상을 말합니다.
육근이 있으므로 육경이 존재합니다. 육근에 의해 외부로부터 사물을 받아들이는데, 육근의 대상으로서 육경이 있습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육근인 눈. 귀. 코. 혀. 몸. 생각의 여섯 가지를 통해서 눈의 대상인 물질, 귀의 대상인 소리, 코의 대상인 냄새, 혀의 대인 맛, 몸의 대상인 촉감, 생각의 대상인 일체 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빛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촉감과 지각하는 여섯 가지 작용은 앞의 육근이 있어야만 비로소 성립되는 것들입니다.
5. 인식 작용이란 본래 없는 것.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안의 세계도 없으며 내지 의식의 세계까지 없다.
십팔계의 부정 십팔계는 육근과 육경, 즉 십이처에 육식(六識)이 합하여진 것. 육식은 육근과 육진 사이에서 도출되는 인식작용을 말합니다. 눈으로 보아서 인식되는 것이 안식계(眼識界)이며, 귀로 듣고 인식되는 것이 이식계(耳識界)이며, 코로 냄새를 맡고 인식되는 것이 비식계(鼻識界)이며, 혀로 맛보고 인식되는 것이 설식계(舌識界)이며 몸으로 촉감을 느끼며 인식되는 것이 의식계(意識界)입니다.
6. 마음먹는 그 순간이 시작이다.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지혜의 눈으로 비춰 보았을 때 모든 것은 텅 비어 없는 것이다. 인간의 생성과 소멸의 모든 과정 또한 텅 비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명이 없으며 무명이 다함도 없다. 행과 식과 명색과 육입과 촉과 수와 애와 취와 유와 생과 노사가 없으며, 그것들의 다함도 없다. 인간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늙어 죽어 가는 모든 과정이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반야의 도리에서는 일체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의 다 하고 끝남도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십이 연기(십이 인연)에 대한 것을 부정 십이 인연은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明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의 열두 가지로 인간에 대한 생성, 변화, 발전, 소멸의 연결 고리를 열두 가지 과정으로 나타낸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밝히는 중요한 대목이며, 자기 자신의 전체의 삶을 그려놓은 하나의 그림이며 자기 자신에 대한 인연의 법칙을 상세히 분석해 놓은 것에 해당됩니다.
죽음 후에 우리 육신은 지. 수. 화. 풍의 사대로 흩어져 버리고 영혼만이 남게됩니다. 그것은 새로운 생을 시작하는 전 단계가 되는 것입니다. 죽음은 깊은 잠의 형태와 유사합니다. 영혼은 깊은 잠에서 있다가 팔식에 잠재되어 있는 무명의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해 인연이 있는 곳을 찿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업식이 있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윤회를 되풀이합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애. 취. 유.의 업을 잘 지어야 합니다.
둥근 모양의 순환관계를 가진 십이 인연 그 어떤 것도 시작이 될 수 없습니다. 무명이 시작도 아니고 또 노사가 끝도 아닙니다. 언제든지 마음먹고 시작하는 순간이 곧 시작의 출발점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둥근 고리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끝낼 수도 머무를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라고 하여 과거, 현재, 미래의 상태로 설명.
과거 이인(무명, 행)의 원인에 의해 현재오과(식, 명색, 육입, 촉, 수)의 다섯 가지가 생겨납니다. 즉, 전생의 두 가지 원인에 의해 현재의 다섯가지 결과가 생기는 것입니다. 현재 삼인(애. 취. 유)이 현생의 이 세 가지가 씨앗이 되어 미래의 결과를 낳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생과 노, 사와 다음에 우, 비, 뇌, 고가 따르는 것입니다.
“무명”은 미혹의 근본으로 정신작용의 가장 초기 단계입니다. 곧 팔식에 남아 있는 정신세계입니다. 그 래서 무명은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기 이전의 상태입니다. 깨달음을 얻고 나면 무명의 세계가 깨어진다는 것입니다 “행” 은 무명으로부터 의식작용을 일으키는 것 즉 어두운 정신세계에서 무엇인가 요동하며 움직이기 시작하는 단계. 다시 말하면 행은 잠재적인 무의식력이며 충동력입니다. “식” 은 무엇인가를 분별하는 인식작용을 말합니다. 새로운 을 시작해야 겠다는 사고를 시작하는 순간 입니다. 과거의 행에 의해 인간 존재의 첫 걸음을 내딛게 되는 의식작용을 말합니다. 이미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간 때로 볼 수 있습니다. “명색”은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가서 받는 "오온", 즉 몸과 마음을 말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막연하게 정신적인 면과 육체적인 면이 나누어집니다. “육입”은 육처(六處)라고도 하는데, 안. 이. 비. 설. 신. 의,의 육근이 형성되는 시기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어머니의 뱃속에서 여러 가지 기관들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외부의 자극이 들어온다고 해서 “육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약5주) “촉 ”은 외부 세계와 접촉하는 시기입니다. 일반적으로 촉의 시기에서는 느낌만 있을 뿐이지 느낌을 식 별하는 기능은 없다고 말합니다. 촉은 태어나서 느끼는 단순한 인식작용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촉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감지하는 것입니다. “수”는 감정을 감수(感受)하고 인상을 느끼는 능력이 발동되는 시기입니다. 수는 육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분별하여 받아들이는 단계입니다. 예를 들면 싫은 것은 배척하고 좋은 것은 받아들이는 현상을 보이는 것이 수의 단계입니다. “애” 즐거움의 대상을 추구하는 맹목적인 욕심(끝없는 갈애) 애착심을 느끼는 단계입니다. 애착심은 애착하는 대상을 계속 진행시키려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이성을 느끼는 감정은 바로 애의 단계입니다. 이를테면 사랑하는 것은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취”는 쉽게 말해서 사랑하는 감정이 일어나면 그것을 끝까지 취하려는 마음을 말합니다. 즉, 삼계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자기가 원하는 것이나 좋아하는 것을 취하고 가지려는 행동을 말합니다. 취는 곧 집착을 의미합니다. 직업을 가지거나 명예, 물질, 사람, 돈 등을 가지려는 마음 또한 취가 됩니다. “유”는 한번 취한 것은 자기 것으로 하려는 소유욕을 말합니다. 유는 애와 취를 바탕으로 하여 거기서 여러 가지 업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됩니다. 앞의 애, 취와 더불어 유는 우리 인생살이의 대부분을 차 지하고 있습니다. “생” 몸을 받아 태어남. 즉 생은 애와 취와 유의 상태로 계속해서 삶을 살아가는 것 애와 취와 유의 생활을 계속 지속하려는 것을 말합니다. “노사” 는 살아가다 늙고 죽는 것을 말합니다. 즉, 늙고 병들어 죽음에 이르는 실존의 형태를 말합니다. 단 생과 사는 육체적 생, 사, 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생, 사 한다고 보게된 꿈과 같은 현상과 정신적인 괴로움까지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노, 사 다음에 우(憂근심), 비(悲슬픔), 뇌(惱괴로움), 고(苦씁슬함)가 따르는 것이다.
"역무무명진"에서는 무명이 다한 것까지도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십이 인연의 하나하나를 관찰해 보니 무명이 다 끝나 무명의 밑바닥이 드러났는데, 그것마저 없다는 것입니다. "역무노사진"에서는 노사가 다한 것까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결국 십이 인연에 매달려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십이 인연이 텅 비어 "무"의상태가 되는 것까지 깨달아야 확연하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7. 해결할 수 없는 고통이란 없다
무고집멸도(無苦集滅道)
사성제(四聖諦)를 부정 지혜의 눈으로 우리 인생을 관찰해 볼 때 삶의 근본이라고 하는 몸과 마음은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데, 그 몸과 마음을 의지하여 일어나는 온갖 고통은 아예 있을 수 없다. 따라서 그 고의 원인도, 고가 소멸된 경지도 고를 소멸하는 방법도 있을 수 없다
사성제의 근본을 따져보면 그 근원이 공이기 때문에 "무고집멸도"인 것입니다. "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즉 일체의 모든 고통을 모두 건너가 버렸기 때문에 "무고집멸도"입니다.
사성제(四聖諦)
苦諦: 현실의 진상을 밝힌 것으로 변하지 않는 진실로써 모든 고통과 불행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고의 대표는 기본적인 생로병사(生. 老. 病. 死)의 사고(四苦)에다 애별리고(愛別離苦), 사랑하는 사람이나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것과 헤어짐으로써 괴로운 것 원증회고(怨憎會苦), 자기가 싫어하는 것과 만나서 괴로운 것(자기가 하기 싫은 일) 구부득고(求不得苦), 구하고자 하는데 얻어지지 않는데서 괴로운 것.(필요로 하는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 오온성고(五蘊盛苦),몸과 마음 그 자체가 하나의 고통이 되는 것 (갑자기 삶이 귀찮아질 때 자신의 몸과 마음이 싫어지는 것) ※위의 여덟 가지를 팔고(八苦)라고 합니다. 集諦: 고의 원인(이유)은 번뇌인데 스스로 집착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업으로 그 원인은 세상의 고정된 실체나 현실이 있다고 착각하여 내 것으로 소유코져 집착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제와 집제는 세속의 진상을 밝힌 것으로 속제 즉 인과의 업보를 말함 滅諦: 이러한 세계에서 벗어나 정토세계로 나아가려면(깨달음의 목표) 道諦: 올바른 가치관과 생활방법(팔정도)을 통해서만 가능. 멸제와 도제는 이상의 실현을 위한 방법을 밝힌 것
※팔정도(八正道)
정견(正見). 바르게 본다는 뜻으로서,[사제(四諦)를 닦을 때 "법을 잘 결택(決擇)하여 관찰하는 것"]
정사(正思), "생각할 바와 생각안할 바를 마음에 잘 분간하는 것" 바르게 마음먹는다는 뜻으로, 세 가지 바른 의업(意業)
정어(正語), 바르게 말하는 것으로 '네 가지 선한 구업(口業)'
정업(正業), 바르게 일하는 것으로'세 가지 선한 신업(身業)'
정명(정명), 바른 생업(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바른 수단, 또는 정당한 방법으로 적당한 의식주를 구하는 것)
정정진(正精進), 바르게 노력하는 것으로 "끊임없이 노력하여 물러섬이 없이 마음을 닦는 것"
정념(正念), 바르게 기억하는 것으로, '생각 할 바에 따라 잊지 않는 것'
정정(正定) 올바른 명상(삼매) 바르게 집중한다는 말로서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는 것. 위의 일곱 가지를 실천할 때 이루어지는 최상의 단계
※육바라밀(六波羅蜜)---관자재보살의 여섯 가지 구체적인 실천덕목
보살이 이상적인 경지인 열반을 증득하기 위해서 실천해야 하는 중요한 덕목입니다. 바라밀은 생각만 갖고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바라밀은 그것을 닦는 자만이 그 진가를 알고 성불에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1.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 즉 자기의 소유물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베풀어줌을 말한다. 진정한 보시는 공덕을 바라고 베풀지 아니하고, 베풀어주어도 준다는 생각이 없어야 하며 주는 자, 받는 자, 주는 물건(마음), 세 가지가 모두 청정하여야 한다. 보시의 종류에는 경제적 어려움을 같이하는 재보시.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 법을 전하는 법보시, 소외되어 살고있는 이웃에게 관심을 갖고 의지처가 되어주는 무외시. 가 있다.
2.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잘 지키는 것을 말한다. 불자가 지켜야할 불 살생, 불 투도, 불 사음, 불 망어 불 음주의 오계, 출가자엔 구족계가 있다. 지계바라밀은 이러한 법과 계율을 잘 지키는 것인데, 이때에도 계율을 지킨다는 부담감이나 자만심이 있어서는 않된다. 죄와 부죄를 얻을 수 없는 불가득의 공관에서 자연스럽고 자율적인 준법생활이 이루어져야 한다.
3.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괴로움을 받아들여 참는 것, 즉 고난을 참고 견디는 것.
4.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부지런히 노력하여 방일하지 않는 것. 진리의 길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
5.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히 사색하는 것,(정신을 흩어지지 않게 안정 시키며 사념(思念) 근원을 투시하는 것.)
6.지혜(반야)바라밀(智慧波羅蜜):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바라밀에 이르는 다섯 바라밀의 주도자이며 그들의 성립기반이 된다. 이 다섯 바라밀은 모두가 반야공관의 입장에서 행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즉, 위 다섯 가지 바라밀을 실천함으로써 얻어지는 최고의 지혜를 획득하는 일, 또는 얻기 위한 모든 노력을 말한다.
육바라밀은 이렇게 반야바라밀을 중심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아낌없는 시여, 자율적인 준법 생활, 끝없는 인내, 굽힐 줄 모르는 정진, 한없이 심오한 사색이 가능한 것이다. 간심(인색함). 범계심(계율을 어김), 진심(성내는 마음), 해태심(게으름), 산란심(정신이 흩어짐), 무지심 (어리석음)이 있을 때 큰 자비는 일어날 수 없다. 그러나 반야바라밀다는 모든 법의 공에 상응하는 까닭에 능히 대자대비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8. 꿈을 깨는 순간 사라진다
무지 역무득(無智 亦無得)
인식의 주체가 되는 지혜도 없고, 인식되는 실체가 얻어짐도 없다.
지금까지 “오온개공”이라 하여 인식의 주체인 자기 자신의 존재가 텅 빈 것으로 보아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는 깨달음을 성취하는데 있어서 필요불가결한 지혜인 직관지(直觀智)마져 부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잠 속에서 아무리 훌륭한 꿈을 꾼다고 해도 꿈을 깨는 순간 다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깨달음을 향하는 최상의 열쇄가 되는 지혜마져도 의식의 잠을 깨는 순간, 즉 깨달음의 문이 열리는 순간에는 모두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지”인 것입니다. 또한 지혜로써 얻어 지는바가 굉장히 큰 것처럼 생각하는 그것 마져 부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득”이라고 한 것입니다.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마음은 곧 얻을 바가 없는 마음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착되지 않는 마음을 통해서 오히려 무한의 얻어짐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4장 반야는 이렇게 나타난다
1. 꿈을 깨면 완전한 자유는 저절로 온다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구경열반 (以無所得故 菩提薩陀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가碍 無가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리살타는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여 마음에 가애가 없으며, 가애가 없는 까닭에 공포가 없으며, 전도몽상을 멀리 떠나서 구경에는 열반인 것이다.
"무소득"은 <반야심경>에서 가장 중심 되는 구절입니다. 뜻으로 볼 때 "조견오온개공"이 제일 중요하지만 궁극적인 핵심구절은 이 "무소득"입니다. 얻을 바가 없는 깊은 도리 때문에 보살은 깨달음을 성취한 것입니다.
"보리살타"를 줄여서 보살이라고 부르며, 깨달은 중생이라는 말입니다. 보살은 올바른 지혜의 완성 자로서 사물의 실상을 관조하고 그 바탕 위에 중생을 제도하는 것입니다. 보살은"무소득의 이치를 터득한 사람입니다. 또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체득한 사람입니다.
"의 반야바라밀다고"는 '반야 바라밀다에 의지한 까닭에 "심무가애" '마음에 아무 걸림이 없다' “무가애고” 마음에 아무 걸림이 없는 까닭에 "무유공포" '두려움이 없고, "원리전도몽상" 꿈꾸듯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멀리 떠나보내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 "구경열반"은 몸과 마음이 완전히 자유의 상태를 누리는 경지입니다. 즉 지혜가 완성된 자리입니다. 즉 “반야심경”이 추구한 궁극적 낙(樂)의 상태가 곧 "구경열반"입니다.
2. 지혜의 완성으로 깨달음의 절정에 이른다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 삼먁삼보리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뇩多羅三먁三菩提)
"삼세제불"은 보살보다 차원이 높은 분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서 깨달음을 이루신분으로 "삼세제불" 은 지혜의 완성으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의반야바라밀다고"는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한 까닭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깨달음의 절정(깨달음의 완전무결한 상태)을 나타낸 말로 더없이 높고 충만한 깨달 음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한순간의 깨달음이 아니라 영속적인 위없는 깨달음을 “무상정각”이라고 말합니다.
제5장 결론
1. 지혜는 신비로운 양약(良藥)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故知 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고로 알라. 반야바라밀다는 위대하고 신비로운 주문이며, 크게 밝은 주문이며, 가장 높은 주문이며, 견줄 데 없는 주문이다.
이 부분에서는 지혜의 완성 그 자체를 하나의 주문으로 보아버리는 것입니다. "대신주" 위대한 주문이요, "대명주" 심원한 지혜의 주문이요, "무상주" 최고의 주문이요, "무등등주" 어디에도 견줄 바 없는 높고 심화된 주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크게 신비롭고, 크게 밝고, 최상이며, 비교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주문이란 뜻입니다. 반야심경의 내용은 너무 깊고 오묘해서 그것은 하나의 주문으로 밖에 표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주문은 지혜의 광명으로 무지(無知)를 깨뜨리는 지고(至高)한 것입니다.
반야심경 속에는 그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들어 있습니다. 누구나 그 열쇠를 갖기만 하면 모든 괴로움의 상황이 저절로 풀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혜의 완성은 중생의 백팔 번뇌를 말끔히 치료해 주는 신비로운 양약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주문입니다.
2. 진실 되어 헛되지 않다
능제일체고 진실불허(能除一切苦 眞實不虛)
"조견오온개공"해서 "도일체고액"하는 내용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내용으로 반야심경의 총결 부분으로, 텅 비어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는 이 반야의 도리는 위대한 주문인 까닭에
能除一切苦: 일체의 고통과 불행과 문제들을 다 소멸한다. 능히 일체의 괴로움을 제거하고 진실해서 헛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 어떤 문제라도 지혜의 완성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능히 일체의 괴로움을 벗어나는 일이 가능합니다.
眞實不虛: 그리고 이 도리는 참으로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다. 본래로 텅 비었기에 허망할 까닭이 없으며 진실 할 수밖에 없다. 이 대목에서는 믿음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진실 되어 헛되지 않는 경지는 믿음 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지혜의 완성 마지막 구절로 능히 일체의 고통을 제거하는 경지에 도 달함으로써 지혜의 완성을 마무리짓고 있는 것입니다.
3. 너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故說 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모지사바하(3번) (揭諦 揭諦 婆羅揭諦 婆羅僧揭諦 菩提娑婆訶 (3번))
고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설하노니 곧 주를 설해 말하되,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여기서 설해진 주문은 “반야심경”의 결론입니다. 그것은 곧 팔만대장경이 결론이며, 불교 전체의 결론입니다. “반야심경” 전체의 내용을 이 한 구절의 주문으로 압축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부터 주문은 번역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습니다.
"아제"는 '가다'의 뜻으로 해석 할 수 있으며
"바라아제"는 '피안으로 가다'는 뜻입니다. "바라아제"는 '저 언덕으로 가는 이여' 혹은'저 높은 곳으로 가자'라고 의역할 수도 있습니다.
"승"은 '집단 모두' 혹은 '총(總)'의 뜻이 있습니다.
"모지"는 '보리', 즉 '각(覺)'이란 뜻입니다.
"사바하"는 '원만, 성취, 구경'등의 뜻이 있는데, 앞의 내용이 원만히 이루어지도록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주문의 뜻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보면, '가는 이여! 가는이여! 저 언덕으로 가는 이여! 저 언덕으로 온전히 가는 이여! 깨달음이여 영원하여라!' 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다시 '가세! 가세! 저 언덕에 가세! 우리 함께 저 언덕에 가세! 깨달음이여 행복이 있을 지이다.'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 하나의 주문으로 “반야심경”의 마지막을 마무리짓고 있습니다. 이 주문 속의 '가는 이여!'라는 말속에는 '당신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어딘가를 향해 끊임없이 가고 있습니다. 한살은 두살을 향해. 학생은 학교를 향해, 어른은 돈과 명예를 향해 끊임없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가는 방향이 전부 다릅니다. 불행을 향해 가는 사람도 있고, 행복을 향해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행복을 위해 간다고 하는 것이 불행을 향해 갈 수도 있고, 올라간다고 하는 것이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자기 자신은 매 순간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불교는 마음을 닦는 공부라고 말합니다. 마음을 닦기 위해서는 자신이 과연 어느 방향을 향해 가고 있는지 항상 되새겨 보아야합니다.
어릴 때는 청년을 향해, 청년은 중년을 향해, 중년은 노년을 향해 쉼 없이 가는 인생이지만, 그냥 가게 내버려두어서는 안됩니다. 육신은 죽음을 향해 가고 있지만, 마음은 지혜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누구나 피안을 향해 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옆길을 돌아보지 말고 피안을 향해서 앞으로 가야 합니다. 진정한 행복과 평화를 향해 가야 합니다. 지혜의 완성은 우리에게 행복과 평화와 자유를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대승불교의 모든 가르침이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260자 밖에 안 되는 반야심경 안에는 금강경, 화엄경, 법화경의 핵심이 다 들어있고, 팔만 사천 경전의 모든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반야심경”의 공 도리를 체득함으로써 그 오묘한 이치가 생활 속의 지혜로 완성되길 기원하면서 맨 마지막 주문인 '너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라는 끝없는 질문을 화두로 남깁니다. “모두 성불하십시오.”
[“무비스님”의 “반야심경강의”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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