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 **/백두대간Ⅰ(終)

[24차] 하늘재->탄항산->부봉삼거리->마역봉->조령(->1관문 주차장)

雪松 2010. 4. 23. 03:24

  백두대간 종주(南進) 24차(탄항산. 마역봉)구간

 

*일시 : 2006년 6월 3일(토요일)     

* 날씨 : 맑음
위치 : 충북 괴산군 연풍면, 충주시 상모면. 경북 문경시
*구간
거리 : 총 8.8km. (접속거리 7.7 km 별도/조령3관문->주차장) 
* 구간별 거리 : 하늘재-(2km)->탄항산 -(2.4km)->부봉삼거리-(3.4km)- >마역봉-(1.0km)->조령3관문 

* 총 산행시간:4시간 25분

* 구간별 진행시간  

-10:45 - 하늘재[525m]
-11:30 - 탄항산(월항삼봉)[856.7m]
-12:10 - 959봉 (주흘산 갈림길)(점심식사25분)
-13:03 - 부봉 삼거리(부봉정상왕복 약30분)
-13:27 - 동문 
-14 :15 - 북문
-14 :44 -  마폐봉[마역봉927m]

-15 :10 - 조령제3관문[650m] 

-17 :00 - 주차장도착

 

 

 

   

백두대간 24차 참석자.

 

하늘재 의 유래

하늘과 맞닿아 있다고 해서 이름지어진 하늘재(해발 525m)의 높이는 이름처럼 높지는 않다.
그런데 왜 하늘재라는 이름을 얻었을까. 그러나 이런 의문도, 고개란 머물기 위한 길이 아니라 타고 넘기 위한 길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쉽게 풀린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 고개의 동쪽은 문경시 문경읍의 관음리고 서쪽은 충주시 상모면의 미륵리인데,
관음과 미륵을 이어주는 길이니 어찌 하늘에 이르는 길이 아니겠느냐는 말이다.

 
그렇다. 오늘의 관음과 내일의 미륵이 만나는 절대의 시간인 ‘이 순간’을 빼고 해탈과 극락을 말할 수는 없다.
관음과 미륵의 중재자로서 하늘재는 우리에게 그것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결코 이 말이 헛소리가 아님은 관음리와 미륵리 일대의 수많은 불상과 석탑들이 증언을 하고 있다. ‘
이 곳 그리고 이 순간’이 곧 극락이자 해탈의 순간임을 알라는 것이다
.

 

겨릅산, 계립령, 대원령으로도 불리는 하늘재는 우리 나라 최초로 뚫린 고갯길. 신라 제8대 아달라왕이 재위 3년(156년)에 북진을 위해 길을 열었다. 죽령 보다 수년 먼저 개통된 하늘재는 남한강의 수운을 이용, 한강 하류까지 일사천리로 뻗어나갈 수 있는 지리적 요충지이다.

신라는 일찍이 하늘재를 교두보로 한강으로 진출하였고, 백제와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했다.
이처럼 중요한 전략거점이다 보니 하늘재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기도 하다.

고구려 온달과 연개소문은 하늘재를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시도했으며 고려 시대 '홍건적의 난' 으로 공민왕이 몽진할 때도 이 길을 이용했다.

 

신라 망국의 한 을 품고 마의태자와 그의 누이 덕주공주가 금강산으로 향할 때 피눈물을 머금고 이 고개를 넘었다 한다.

하지만 하늘재는 조선태종 14년에 지금의 문경새재인 조령로가 개통되면서 군사적 요충지와 사통팔달의 아성을 한꺼번에 조령에게 넘겨 주게 되었다. (펌)

 

 

 

하늘재 들머리 입구.

 

 

 

통천문

 

 

 

 

주흘산 아래 평천리 마을.

 

 

 

탄항산(월항삼봉)- 주흘산을 마주 바라보고 서 있다.

 

 

 

 

월항삼봉(탄항산)에서....

 

 

 

주흘산과 부봉 갈림길(959봉).

 

 

 

부봉에서의 조망-좌로부터 월악산영봉,만수봉,포암산.

 

 

 

부봉에서의 조망- 포암산.

 

 

 

부봉에서...

 

 

 

부봉에서의 조망 - 좌로부터 월악산영봉,만수봉,포암산

 

 

 

동문.

 

 

 

북문.

 

 

 

마패봉에서의 조망-주흘산과 부봉.

 

 

 

마패봉에서의 조망-주흘산과 부봉.

 

 

 

마패봉에서의 조망-파노라마/월악산과 북바위산 박쥐봉 인근의 산군들.

 

 

 

마패봉에서의 조망/월악산과 북바위산 박쥐봉.

 

 

 

마패봉에서의 조망-월악산.

 

 

 

마역봉(마패봉).

 

 

 

마패봉에서의 조망-신선봉.

 

 

 

마패봉에서의 조망/ 남으로 깃대봉-신선암봉-조령산으로 이어지는 대간 마루금.

 

 

 

마패봉에서의 조망-주흘산과 부봉.

 

 

 

조령3관문

 

[문경새재]-펌
조선시대 한양과 영남을 잇는 관문으로, 낙동강과 한강을 연결하는 가장 짧은 고갯길이 새도 쉬고 넘는다는 새재다.
문경새재는 6.3km 전 구간이 흙길로 남아있는 포장되지 않은 날것의 감각을 지닌 소중한 흙길이다.


70년대 국토개발을 진두지휘 했던 고 박정희 대통령이 유독 이 고갯길 만큼은 포장하지 말고 흙길로 남겨두라고 지시해 천만다행으로 남은 흙길이다. 문경시에서 매일 물을 적시고 마사토를 뿌려 단장한 매끄러운 흙길은 돌멩이 하나 없이 매끈하다.

조선시대 500년간 영남의 관문 역할을 했던 새재!
동래에서 한양으로 가려면 추풍령과 새재, 죽령 등 3개의 고개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이중 새재 코스가 열나흘 걸리는 가장 빠른 길이었고 추풍령은 보름길, 죽령은 열엿새길이었다고 한다.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은 유독 새재를 고집했다. 왜냐구요?


추풍령은 추풍낙엽 떨어지듯 낙방할 것 같고 죽령은 대나무 미끄러지듯 떨어질 수 있어 피했다고 한다.
새재를 넘어 과거를 치른 영남유생들의 합격률이 높자 호남의 선비들도 일부러 이 고개를 넘기위해 영남 땅으로 돌아 넘었다고 한다.


새재에는 고갯길 입구의 주흘관, 중턱의 조곡관, 고갯마루의 조령관 등 3개의 관문이 있다.
제1관문, 제2관문, 제3관문으로도 불리는 이 성곽은 임진왜란때 순식간에 한양을 빼앗기자 전란이 끝난 후 부랴부랴 쌓은 것이다.


제1관문인 주흘관에서부터 제2관문인 조곡관 까지는 곱게 물드는 단풍과 함께 경상도 감찰사 이취임식이 열리던 교구정, 나그네 한 수 쉬었다 가던 주막, ‘산불됴심’ 한글비 등 볼거리가 많다.
길을 따라 흐르는 맑디 맑은 계곡물이 내내 동무해주는 편안한 길이다.

 
조곡관을 지나면 길은 숲으로 들어온 듯 고즈넉해진다. 조곡관 뒤 솔향 그윽한 송림은 맨발의 여정을 잠시 쉬며 준비한 간식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조령관까지 길은 인적이 드물어 조용히 자신과 이야기하며 걷는 공간.


문경새재 아리랑비를 지나 ‘장원급제길’이라는 소로로 접어들면 과거 보러 가던 선비들이 급제를 기원하던 책바위가 있다.

타박타박 6.5km의 새재 흙길을 다 오르면 제3관문인 조령관이다. 성문 너머는 충북 괴산땅. 괴산쪽 고갯길은 아쉽게도 포장도로다.

이 고갯마루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어느 기왓장을 타고 흘러내리느냐에 따라 남쪽의 낙동강 물로 합류되거나 북쪽의 남한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조령2관문-조곡관

 

조곡관(鳥谷關)-영남제2관(嶺南第2關)

선조 27년(1594)에 충주인 신충원이 축성한 곳으로 중성(中城) 이라고도 한다.

숙종조에 관방을 설치할 때 옛 성을 개축하였으나 관(關)은 영성(嶺城 : 3관문)과 초곡성(1관문)에만 설치하고 이곳에는 조동문(鳥東門) 또는 주서문(主西門)을 설치하였다.


그후 1907년에 훼손되어 1975년에 복원하였다.

이렇게 복원한 문루를 옛 이름 조동문(鳥東門)이라 하지 않고 조곡관(鳥谷關)이라 개칭하였다.

누각은 정면이 3칸 측면 2칸이며 좌우에 협문이 2개 있고, 팔작(八作)지붕이다.

 

홍예문은 높이가 3.6m, 길이 5.8m이다. 대문의 높이는 3.6m, 폭 3.56m, 두께 11㎝이다.

좌우의 석성 높이는 4.5m, 폭 3.3m, 길이 73m이고, 좌우의 성벽의 높이는 2m, 폭 2~3m, 길이는 동측이 400m, 서측이 100m이다.

 

 

 

조령1관문-주흘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