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 **/백두대간Ⅱ(終)

[2차] 주촌리->수정봉->여원재->고남산->매요리

雪松 2010. 9. 14. 09:35

 백두대간 왕복종주(北進) 2차/고남산구간.

 

 

제2차 : 주촌삼거리->수정봉->여원재->고남산->매요리

 

 

*일시 : 2010년 9월 12일(일요일)

   

* 날씨 : 비온후 갬.

 

*누구와? : 대자연 산악회 10차백두 대간 종주팀과 함께..

 

*코스 및 거리 : 총 산행거리 17.22km   

   

   주촌리-(6.75㎞)->여원재-(5.47㎞)->고남산 -(5.0㎞)->매요리.

 

* 누적거리 : 총734.65km중/ 31.07km진행.

 

구간 진행시간(총 6시간 20분)

○ 10:20 - 주촌삼거리.

○ 10:30 - 노치샘(550m)

○ 11:12 - 수정봉(804.7m)

○ 12:40 - 여원재(480m)

○ 15:00 - 고남산(846.4m)

○ 16:40 - 매요리(470m)

 

    *개념도

 

 

▲ 구간 개념도.

 

찬이슬이 내린다는 백로가 지난지 며칠이 되건만 무더위의 기세가 아직도 수그러들지 않는다. 그렇게도 유별나게 폭염을 쏟아붓던 그 여름이 그렇게도 서러운지 어제부터는 다시 전국에 걸쳐 호우주의보가 내려진 상태이고, 밤새 세차게 내리던 비는 아침이 되어도 좀처럼 그칠  기세는 보이지 않는다.

 

속수무책으로 쏟아지는 비때문에 백두대간을 떠나는 산꾼의 마음까지 변하게 만들었을까? 지난번 45인승 관광버스두 대로 출발하던 2차 대간길이, 8차팀과 10차팀이 합쳐 버스한 대로 출발하게 되는 이변이 생겼다.

 

다행이도 덕유산 휴게소에 이를 무렵 비는 그쳐가고 군데군데 파란 하늘이 보이더니, 함양을 지나 88고속도로에 진입하면서부터 구름이 걷히고 구름이 걷힌 하늘에서 신선한 햇살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10시 20분, 지난번 지나왔던 고리봉과 오늘 가야할 수정봉이 보이는 덕치리 입구 삼거리 길에 도착한다. 지리산 줄기를 뒷 배경으로하여 여느때처럼 기념사진을 찍은 후 정령치로 가는 60번 포장도로를 버리고 수정봉을 바라보고 왼쪽으로 세멘트 포장길을 따라 백두 대간 두 번째 일정을 시작한다.

 

 

 

▲ 두번째 구간 참석자들의 기념사진. 

 

노치마을 표석이 있고 표석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오른쪽 길을 따라가면 길 양옆으로 누런벼가 출렁이는 황금들녘이 펼쳐지는데,

들판을 가로지르는 이길이 낙동강과 섬진강의 수계를 가로지르는 백두대간 마루금이다.  

 

 

 

▲ 10시 20분/ 노치마을입구에서 두번째 산행을 시작한다.

 

 

 

▲ 노치마을 입구.

 

다시말하면 이길을 경계로 좌측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섬진강으로 , 그리고 오른쪽으로 흘러가는 물줄기는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이 평범한 마을길이 섬진강과 낙동강의 수계가 갈라지는 분수령이 되는 것이다.

 

노치마을로 향하는 이길을 따라서 행정구역이 갈라져 있는데

왼쪽으로는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와, 오른쪽으로는 운봉읍 주촌리로 갈라진다.

 

 

 

▲ 들판길을 따라 마루금이다.

 

 

 

▲ 백두대간이 지나는 마을이 전국에서 이곳뿐이랴마는...

 

 

 

▲ 노치리 마을.

 

 

 

▲ 노치마을.

 

노치샘 앞에 다래 나무 넝쿨을 심어 쉼터를 만든 마을구판장의 모습은 예전과 조금도 변함이 없다

노치샘도 또한 변함이 없기는 마찬가지이고...

지난번 5차 대간길서는 이곳 구판장에서 막걸리 한주전자와 아이스크림을 사먹던 기억이 새롭다.

 

노치샘과 노치마을은 해발550m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수정봉이 800m가 넘는 고봉임에도 불구하고 마을 뒷산의 조그만 산으로 느껴지는 이유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계룡산 남부능선의 향적산(향적봉 또는 국사봉)의 높이가 585m인점을 감안해보면

이마을과 노치샘의 높이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돌아보면 고기삼거리에서 노치마을까지의 평범했던 아스팔트 도로길도 백두대간 길임이 어색해지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이다.

 

 

 

▲ 노치샘/해발 550m./계룡산 향적봉이 585m인것을 감안하면 높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 노치마을 명물 당산 소나무와 당산제전.

 

마을 뒷산으로 오르면서 수형이 긴가지를 멋드러지게 늘어뜨린 아름다운 아름드리 네그루의 소나무를 만난다.

자세히보면 조금 작은 나무까지 다섯그루...

 

나무 아래엔 당산제전이란 비와 제단이 있다. "당산"이란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어보니

"토지나 마을의 수호신이 있다하여 신성시하는 마을주변의 산이나 언덕"이라고 되어 있다.

"당산제전"이라함은 이곳에 제를 올리는 제단이 되겠다.

 

 

 

 

▲ 수정봉 가는 소나무 숲길.

 

당산 소나무가 있는 곳을 지나면서 한동안 수정봉을 향하여 급경사 길을 이룬다. 산은 온통 재래종 토종 소나무 숲길이다.

고도를 높여 갈수록 평지와는 달리 안개가 짙어 진다.

수정봉으로 가는 삼거리 길엔 송이 버섯이 나는지 송이를 지키고 수확하기 위한 사람이 기거하는 듯한 천막이 보인다.

삼거리 길에서 마루금은 우측 길이다.

 

 

 

▲ 수정봉(804.7m) 정상

 

11시 12분 수정봉 정상이다. 비가 이슬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어짜피 땀에 젖으나 비에 젖으나 마찬가지다. 그대로 비를 맞으며 걷는다.

 

수정봉은 옛날 이곳에 수정광산이 있어 수정봉이라 부르게 되었다는데,

풍수지리학적으로는 이산의 형세가 마치 학이 날아가는 형상을 하고 있단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이곳 노치마을에 민씨라는 성을 가진 거지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추운 겨울날 민씨가 죽어 시체를 매장하는데 신기하게도 시체의 관이 들어 갈만큼 눈이 녹아있어 이곳에 장사는 지내게 되었는데,

바로 이곳이 용은 용인데 주인이 없다는 황룡무주(黃龍無主)의 영당이었다고 한다.

 

 

 

▲ 맑을숙과 허사장님그리고 초현님...

 

 

 

 

▲ 수정봉 삼각점.

 

 

 

▲ 입망치.

 

입망치(笠望峙)
동쪽의 운봉읍 행정리 갓바래 마을과 서쪽의 이백면 과립리 입촌마을을 넘나드는 고갯길이다. 
이 고개 명칭인 "갓바래란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면 입망치가 된다고 한다.

 

 

 

▲ 700봉 정상.

 

 

 

 

▲ 여원재에 내리다./12시 40분.

 

12시 40분 남원에서 운봉을 거쳐 함양으로 가는 24번 국도가 지나는 여원재에 내려 선다.

내려서는 길 초입에 "운성대장군"이라고 씌인 돌장승이 서 있다. "운성"이란 이곳 "운봉"의 옛지명이라 한다.

 

이곳은 해발480m의 고원지대이다. 남원시내와는 2~3도의 온도차이를 보이는 곳으로 운봉고원이 시작되는 곳이라고 한다.

길 옆에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는 밭이 많은 이유를 오늘에야 알았다.

 

우리나라 목기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남원목기는 오래전부터 이곳 운봉의 특산품이 되어왔다.

또한, 운봉읍 화수리 비전 마을은 국악인들에는 판소리의 성지와 같은 곳이라 한다.

 

섬진강을 사이에 동편제와 서편제로 나누어지는데, 그중에 운봉은 동편제의 뿌리라는 것이다. 

동편제의 창시자로써 판소리계의에서 최고의 칭호인 "가왕(歌王)"으로 불리는

"송홍록(1780년~1869) 명창이 이 비전마을에서 태어났으며,

또한 국창 "박초월(1916~1983)이곳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 24번 국도(남원- 운봉- 함양)가 지나는 여원재(480m)

 

고전 "흥부화 놀부"에 나오는 연흥부의 고장은 남원이라고 한다.(남원사람들의 주장) 

이고장 사람들은 제비가 흥부에게 박씨를 물어다주며 넘나들었다하여

이고개를 흥부의 성을따서 옛날에는 "연재"라 불리웠었다던 이곳을 지금은 여원재라 부르는데 그연유는..

 

고려말 왜구가 출몰하여 약탈이 심하던 시절

이곳을 침탈한 왜구수장 "아지발도"의 희롱에 스스로 칼로 자신의 왼쪽 젖가슴을 자결한 여인이 있었다.

 

고개 마루턱에는 이여인의 여신을 수호하는 산신각이 있는데,

그곳의 이름을 여원(女院)이라 부른데서 지금은 "여원재"라 부른다는데

이 여인와 이성계에 얽힌 여원재에 전해오는 전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옮긴글)

 

고려시대에 이르러 1380년(우왕 6년) 황산대첩시

안개가 자욱한 이 곳 여원치에서 이성계장군이 행군 도중 백발이 성성한 노파로부터 전승(戰勝)의 날짜와 전략을 계시 받았다 한다.

 

전설에 의하면 그 노파는 당시 경남 함양 지방의 미모 단정한 주부였는데

왜장 아지발도가 그녀를 희롱하며 젖가슴에 손을 대니 칼로 왼쪽 젖가슴을 베어 자결한 원신(怨神)이었다 한다.

 

후에 이성계는 이 백발 노파가 필시 산신령이라 여기고 이를 기리기 위해

노파를 만났던 고개의 석벽에 여상(女像)을 새기고 그 위에 산신각을 지어 보존케 하였다.

 

따라서 지리산 산신령은 보통 여자로 알려져 있고 이러한 산신령이 사는 곳을 여원(女院)이라 불렀다.

그리하여 지리산 산신령이 사는 이곳을 여원치(여원고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 여원재에서 고남산쪽 들머리.

 

 

 

▲ 고남산(오른쪽)으로 가는 마루금.

 

오른쪽으로 나즈막하게 보이는 고남산 정상이 실제로는 계룡산보다도 높은 846m이다.

시각적으로 낮게 보이는 이유는 내가 서있는 이곳의 고도가 해발470m로 높기 때문일 것이다.

 

 

 

▲ 저 아름다운 하늘에서 방금전까지도 비가 내렸었다.

 

 

 

▲ 운봉시가지와 구름이 내려와 감싸고 있는 바래봉 정상(좌)./우측으로는 세걸산과 고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 고남산을 오르는 철계단.

 

 

 

▲ 남원시와 주변의 조망.

 

 

 

▲ 가야할 마루금/ 멀리 백운산과 장안산도 보이고...

 

 

 

▲ 고남산 정상.

 

고남산은 고려말 1380년 (우왕6년)에 인월면 인월리에 본거지를 둔 왜장 아지발도에 맞서

이성계가 천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이곳에 당도하여 제단을 쌓고 산신제를 올리고 대승을 거두었다하여

"태조봉" 또는 "제왕봉"이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한다.

 

고남산 정상의 통신시설은 지리적으로 전라도와 경상도를 연결하는 중요한 통신시설이라고 한다.

 

 

 

▲ 고남산 정상.

 

 

 

▲ 고남산 정상에서의 흔적/장빠루님 작품.

 

 

 

▲ 허사장님.안데스님.박현수님과 같이../맑을숙님 사진.

 

 

 

 ▲ 고남산 정상에서/박현수님. 장빠루님과같이../맑을숙님 사진.

 

  

 

▲ 지나온 마루금을 돌아 보니....

 

 

 

 ▲ 고남산 삼각점.

 

 

 

▲ 고남산 정상석/ 산불감시장비에게 제자리를 빼았겼습니다.

  

 

 

 

 

▲ 매요리 마을 넘어가는 고개/해발 470m.

 

 

 

▲ 대간 마루금이 다시 마을로 내려왔다.

 

 

 

▲ 요즘엔 토종 꺼먹 흑돼지 보기도 귀하지요? 4년전 그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매요리의 유래(옮긴 글)

매요리는 지세가 말의 형국을 닮았다 하여 원래 '말 마(馬)'자와 '허리 요(腰)'자를 합하여 마요리(馬腰里)라 칭하게 된 마을인데, 

그 후 임진왜란, 정유재란이 7년 만에 끝나자 고승 사명대사가 산천을 두루 유람하다가 마요리에 당도하였을 때 

매화의 꿋꿋한 정기가 감도는 것을 보고, 이 마을 사람들은 매화같이 선량할 것이니

지형과 인심에 맞게 매요리(梅要里)로 고치는 것이 합당하다 하여, 그 후 부터 매요리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16시 40분 /매요리 마을회관에서 두번째 일정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