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至心歸命禮 **

불교입문/ 제4장 인생과 불교

雪松 2010. 11. 11. 18:57

  제4장 인생과 불교


1 인연으로 받는 새로운 생


세상의 모든 것은 인연이 닿아야 이루어진다. 한 알의 곡식이 여물기 위해서도 뜨거운 태양과 때 맞춰 내리는 비, 그리고 결실기에는 마른 바람이 골고루 불어 주어야 한다. 여러 가지 인연요소 가운데 어느 한가지라도 갖춰지지 않는다면 곡식은 여물지 않을 것이다. 한 알의 곡식에도 이토록 천지자연의 조화의 인연이 있어야 하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리 우는 사람이 이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 있어야 할 많은 소중한 인연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인간은 끝없는 세월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지은 여러 가지 인연이 모여서 지금의 이 생을 받았다고 한다. 육도윤회의 여섯 갈래 가운데 다른 악취도에 떨어지지 않고 사람의 몸을 받은 것을 보면, 우리가 지은 인연들은 참으로 선근 공덕이 아니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 자신이 과거세에 지은 과보를 이 생에 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하고, 또 남에게 빚 진 것을 갚고, 남에게 해 되는 일을 한 것을 참회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말도 있다. 그래서 지은 공덕이 많은 사람은 이 생에서 잘 살고, 좋은 공덕을 닦지 않아 전생에 잘못이 많은 사람은 이 생에 태어났어도 힘겹고 고달픈 삶을 살게 된다고 한다. 이 말에 따르면 이 생은 견뎌내야 할 과보일 뿐, 향상도 극복도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인생을 이와 같이 소극적으로 바라보며 살아서 되겠는가. 부처님 말씀에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그 중에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기가 정말로 어렵다고 했는데, 하물며 그 어려운 단계를 다 지난 우리 불자들에게 설사 지은 업이 있다고 하더라도 부처님의 정법 속에 사는 지금 업의 소멸에 짓눌려 살아서 되겠는가? 오직 우리에게는 깨달음을 위한 수행과 정진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ꡐ거룩한 만남과 깨닫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ꡑ고 정의 할 수 있다. 즉 우리는 지난 세월에 지은 업보를 갚기 위한 슬픈 삶이 아니라 깨달음의 원력을 실현하는 기쁜 삶이라는 것을 알고 살아야 할 것이다.


2 불자의 신행 생활


안심입명(安心入命)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을 살아나가면서 부딪치는 갈등과 불안을 잠재우고 평화와 안락의 삶을 살아가라는 뜻일 것이다.


불자의 삶이란, 삶의 가치와 기준이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진리에 의지해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 생에서 단 한번 뿐인 삶을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소중하고 가치 있게 보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것은 어떤 삶일까?


불교에 입문하신 분 가운데 불교집안에서 어릴 적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자연스럽게 접해 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종교를 믿지 않거나 다른 종교를 믿다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불교는 바른 사고와 실천을 기본으로 하는 종교이다. 그러므로 불교가 추구하는 것은 올바른 삶이며 불자가 되는 데는 특별한 절차나 과정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동안 살아왔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고, 앞으로의 삶은 바른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며 살아가겠다는 다짐만 있으면 된다. 오래 믿은 사람과 지금 시작하는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 없다. 다만 앞으로 어떻게 신행생활을 하느냐에 따라서 현격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반복할 수 없는 소중한 인생에서 어느 한 순간도 소홀히 여길 수는 없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삶의 중요한 계기가 되는 시점이 있다. 그 시기는 이전의 삶을 종합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이후의 삶을 규정한다.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는 혼례가 그렇고, 이 세상의 인연이 다하여 생을 마감하는 죽음이 그렇다. 그 과정을 불자로서 맞이하고 통과하기 위해서는 불교적인 세계관과 인생관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그것이 불교인의 삶을 다른 삶과 구별 짓는 중요한 요소라고 하겠다.


불교인이 되면 불교의 고유한 의례와 의식을 만나게 된다. 의례와 의식은 신앙의 외적 표현이면서 동시에 그 안에 교의를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오랜 역사 속에서 문화와 풍습으로 정립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는 다소 형식적일 수도 있지만, 의식에 깃들인 참된 의미를 알고 행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불교의식에는 가장 기본적인 정기법회가 있고, 입문의례로서 수계의식이 있다. 또한 개개인의 절실한 소원을 이루기 위해 행하는 다양한 기도와 발원의식이 있고, 종교적 성취와 발전을 위한 수련의례가 있다. 그밖에 불교 나름의 의미가 부여된 특별한 시기에 치르는 명절의례가 있으며, 일반 삶 속에서 흔히 만나는 혼례, 상 장례 등의 평생의례가 있다. 또한 일반 신자들이 행하는 의례가 있는 반면 출가 수행자들만이 행하는 전문적인 의례도 있다.


우리 불자들은 불교의식에 의하여 참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면 자신은 물론 가정과 사회도 더욱 맑고 밝아질 것이다.


1 거룩한 생명


한 개인의 생명은 타인의 생명과 구별되는 독립된 인격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뗄래야 뗄 수 없는 여러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나를 낳아준 부모와의 인연이 없었다면 세상에 태어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한 생명을 맞이하기 위해 많은 정성을 기울여 왔다. 후손을 바라는 마음에서 백일 치성을 드리거나, 정한수를 떠놓고 빌기도 하였다. 치성을 드릴 때에는 목욕재계 하고 깨끗한 흰 옷으로 갈아 입었으며, 오직 바라는 바를 성취하기 위하여 모든 정성을 다하였다. 어떤 사람은 하룻밤 사이에 찬물에 목욕을 열 두 번 하였다고도 하며, 어떤 사람은 옷을 열 두 번 갈아입어 몸에 서린 부정을 없애는데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귀하게 생명이 얻어지면 태 속에 있을 적부터 거룩한 한 생명으로 대접하여 바른 인성을 가질 수 있도록 태교에 정성을 다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요즘에는 성 개방 풍조로 말미암아 미혼모가 급증하고, 또한 남아선호 사상의 영향으로 태아 성감별 등을 통하여 인공중절을 쉽게 행하고 있다. 한 통계에 따르면 신생아의 두 배 이상이 인공중절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거룩한 인연으로 만난 생명을 너무나 가볍게 여기는 일이다. 이런 세태에 물들지 말고 생명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하겠다.


즉 아이가 갓 태어났을 때에는 가정과 사찰에서 바르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축원해주고, 아이가 성장하여 유치원이나 어린이 법회에 나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때에는 부처님 전에 기원한 부모의 발원을 알려주며 신행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어릴 적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면서 성장하면 나중에도 불교적 덕성을 지닌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 사찰에 자주 가서 절 분위기에 친숙해지도록 해주고, 스님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배우도록 인도해야 한다. 그리하여 어린아이가 부처님께 귀의하고 가르침을 배우고 스님들을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란다면 커서도 바른 인간 바른 신행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바른 사람, 바른 불교인으로 교육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부처님은 모든 중생이 나와 똑같은 성품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의 교육관은 인간 각자가 지극히 거룩한 가치와 덕성을 지닌 고귀한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자기 자신을 참되게 존중하는 사람은 남을 업신여기지 않고, 자신이 거룩한 부처님의 성품이 있음을 아는 사람은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삶을 깨닫고 그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 길러내는데 불교교육의 목적이 있는 것이다.


요즘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사회적, 법률적으로 성인으로 인정하지만, 가정에서는 결혼 여부를 성인으로 인정하는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불교에 있어서는 계를 받아 지키는 것이 성인의 가름이 될 수 있다. 수계는 자기 삶을 경건하고 바르게 유지하겠다는 다짐이다. 아직 판단력이 없는 어린 아이에게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스님들께 귀의하는 삼귀의례를 주는 것이 좋으며, 자라서 스스로의 의지력으로 계를 받아 지닐 수 있을 때에 오계를 받도록 하여야 한다.


<어린이 법회>


2 불교의 혼례


불교의 혼례 절차는 과거 구원겁 전에 선혜선인과 구리선녀가 혼인을 약속하고 각각 꽃 다섯 송이와 두 송이를 보광부처님께 바쳤다고 하는 전생담에서 유래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혼례를 올릴 때 꽃을 바치는 헌화의식과 혼인을 고하는 고불식을 반드시 한다. 그리고 요즘에는 두 사람이 혼인하기 전에 부처님 전에 기도를 올리고 스님을 청하여 법문을 듣고 미래의 행복한 삶을 서로 약속하는 풍속도 생기고 있다. 이는 좋은 일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혼인하는 두 사람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행복한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장차 성불하겠노라 는 서원이 있을 때 완벽한 혼례라 하겠다.


그리고 혼례장소는 답답한 예식장보다 부처님께서 계시는 법당이나 절 마당 그리고 야외에서 혼례식을 올리는 것이 좋으며, 혼례복도 실용성이 없고 사치스러운 웨딩드레스 보다 우리 고유의 전통 한복 또는 개량 한복으로 준비해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3 법회


선남자여, 누가 가장 높고 착한 이인가.

먼저 부처님과 법을 믿어야 하며,

믿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절에 가야 하며,

절에 가서는 예배하여야 하며,

예배하되 법을 들어야 하며,

법을 들을 때는 지성으로 듣고 뜻을 생각하여야 하며,

배운 대로 행해야 하며,

자기만의 해탈을 구하지 말고 대승에 회향하여

일체 중생에 이익 되고 중생을 안락하게 하여야 하느니라.

이런 이가 가장 높고 착한 이니라.

≪대반열반경≫ 범행품


불자들의 신행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법회 참석이다. 그러나 농경사회를 지배했던 태음력 위주의 생활양식은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일주일 단위로 노동과 휴식이 반복되는 태양력 위주의 생활양식으로 바뀌어 전통적으로 전해오던 법회도 현대의 생활주기와는 맞지않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 사찰에서는 음력 위주의 법회와 양력 위주의 법회가 혼합하여 열리고 있다. 불자는 법회에 적극 동참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법회란 불교에서 가장 거룩한 만남의 장이며, 부처님이 가르치신 진리를 배우고 전파하는 자리이다. 즉 불보살님께 공양을 올리고 재를 마련하여 널리 베풀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설하여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는 것이다.


지금 절에는 매달 같은 날이나 같은 요일에 정기법회가 있다. 부처님 당시에는 보름마다 포살일을 정해 자신의 허물을 대중 앞에 고백하고 참회하는 의식이 있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정기법회의 시초라 할 수 있다. 매달 10재일이 있는데, 1일은 정광(定光), 8일은 약사(藥師), 14일은 현겁(賢劫) , 15일은 미타(彌陀), 18일은 지장(地藏), 23일은 대세지(大勢至), 24일은 관음(觀音) , 28일은 노사나(盧舍那), 29일은 약왕(藥王), 30일은 석가(釋迦)재일이다. 이 중 일반 대중이 동참하여 기도하는 법회는 초하루, 보름, 그리고 지장재일, 관음재일이며 사찰에 따라 약사, 미타 등 한, 두 번의 법회를 더 진행하기도 한다. 지장, 관음재일이 특히 많이 지켜지는 이유는 지옥 중생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지장보살과 중생들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주는 관세음보살이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지장재일에는 지장예문과 돌아가신 분을 위한 발원과 정근, 즉 돌아가신 영가의 왕생극락을 기원하고, 관음재일에는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구하는 예불과 발원을 한다.


또 전통적으로3장6재일이라고 하여1월, 5월, 9월의 초하루와 보름에 정기법회를 개최했으나, 요즘에는 현대인의 생활에 맞게 일요법회, 수요법회 등의 요일법회와 방학이나 휴가를 이용한 수련법회가 정기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보통 신도법회는 평일 오전이나 오후에 주로 봉행 되고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 청년 법회 등은 주로 토요일이나 일요일을 정기법회일로 하고 있다.


이외에도 특별한 법회들이 있다. 우선 불상을 새로 모시는 점안법회(點眼法會)를 들 수 있다. 이는 부처님상을 모시는 법회로써 불교에서 부처님상을 모시는 것은 거룩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워 익히며 실천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부처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불상을 조성해서 봉안하는 것이다. 탑이나 법당을 건립할 때는 기공식과 낙성식의 법회를 하고, 불상이나 탱화를 신앙의 대상으로 인정하는 점안식을 봉행 한다. 아무리 훌륭한 불상이라 하더라도 점안식을 하지 않으면 작품으로는 인정 받을지는 모르지만, 신앙의 대상은 될 수 없다. 또한 이 의식은 일반신도가 할 수 있는 의식이 아니라 반드시 증명법 사님을 모시고 법식에 의하여 진행되어야 한다.


또 부처님이 제정한 계법을 받는 수계법회(受戒法會)가 있다. 재가신도나 출가수행자는 불교교단에 입문하기위해 오계, 십계, 보살계, 구족계 등을 받아야 한다. 집단적으로 계를 받는 행사를 수계식이라 하고 수계후에 주어지는 법호를 계명(스님은 법명, 신도는 불명)이라고 한다.


또 성지순례 법회가 있다. 이는 부처님의 사대성지를 불자 된 사람으로서 순례하며 참배하는 의식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유서 깊은 사찰과 우리 고유의 전통 문화인선조의 발자취를 찾아 순례하는 것도 성지순례 법회이다. 따라서 이 법회는 성지를 순례하며 신심을 북돋을 뿐만 아니라 한국불교의 찬란한 전통과 문화유산을 배우고 느끼는 소중한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4 방생의 공덕


나의 생명이 소중하다면 다른 생명도 소중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의 자유를 성취하기 위해서 다른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오늘날과 같이 생명경시 풍토 속에서는 방생이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 보다 넓은 마음에서 생명계를 사랑하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했을 때만 생명과 함께 사는 사회가 이루어질 것이요, 방생(放生)의 공덕이 있을 것이다.


옛날부터 음력 정월 대보름, 3월3일, 8월 보름에 방생법회를 열어왔다. 그러나 요즈음은 특별한 시기를 정하지 않고 수시로 하고 있다. 방생은 죽게 된 생명을 살리는 운동이다. 비록 미물일지라도 그 생명을 소중히 여겨서 죽이지 않고 보호하는 의식이다. 작게는 사람의 손에 걸려 죽게 된 고기나 새 등을 사서 제 살던 곳으로 다시 놓아주는 것이지만, 본래적인 의미는 불살생계를 적극적으로 실천해서 만 생명을 살리는 일을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살생을 하는 것은 전생의 부모형제를 죽이는 것이고 미래의 부처님을 죽이는 행위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살생의 반대인 방생의 공덕을 짓는 일은 결국 내 부모 형제를 살리는 일이며 나 자신의 거룩한 생명을 더욱 살리는 일이 된다 하겠다. 방생의 공덕은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다.


첫째 자식을 원하는 사람은 방생하라. 남을 살게 해 주는 것이 나를 살리는 것이니 자식의 경사가 있게 된다.


둘째 임신을 하면 방생하라. 방생은 만물을 보호하는 것이니 산모도 반드시 보호 받게 된다.


셋째 기도할 때 방생하라. 기도함에 방생의 공덕이 크기 때문이다.


넷째 예수재를 지낼 때에도 방생부터 행하라. 방생으로 불보살님의 감동을 받으면 큰 복을 받기 때문이다. 다섯째 재계를 할 때, 여섯째 출세를 구하려 할 때, 일곱째 염불할 때도 방생을 하라고 하였다.


방생은 선근공덕을 짓고자 하는 여러 사람이 모여 행할 때도 있고, 재난을 만났거나 병 때문에 원을 세워 방생할 때도 있고, 집안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그 전후로도 방생을 한다.


요즘은 방생이 단순히 물고기나 새를 놓아주는 일 말고도 고아원이나 양로원 등을 방문하는 등 어렵고 소외된 이웃에게 부처님의 자비를 베푸는 사회 봉사적인 행사로 발전하고 있다.


5 불공


불공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불공은 단순히 물질을 공급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귀의, 참회, 공양, 발원, 회향이 여법하게 갖추어지는 의식을 통틀어서 말하는 것이다.


불공은 우리의 삶이 뜻대로 되지 않아 괴로움과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 이를 소멸하고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에서 올리기도 하고, 혹은 원하는 일들이 뜻대로 되었을 때 부처님께 감사의 뜻으로 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일의 성패나 행운, 일상적 일에 관계없이 항상 진리 속에 살면서 삶의 눈을 뜨게 해준 고마움과 부처님의 크신 위신력을 믿고 존경하며 본받기 위한 수행의 일환으로 불공을 올려야 한다.


불공의 핵심은 베품이다. 공양은 음식이나 의복, 혹은 그 밖의 물건을 삼보님과 부모님, 스승과 망자에게 공급하는 것으로서, 특히 삼보님께 공양하는 것은 선업을 쌓는 일로 크게 장려하고 있다.


공양하는 물건이나 공양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세간의 재물이나 향, 꽃 혹은 생활용구를 공양할 수도 있고, 보리심을 일으켜 자리이타의 행을 닦는 공양도 있다.


몸(身)으로 하는 예배 공경과 입(口)으로 하는 찬탄과 뜻(意)으로 부처님을 생각하고 존중하는 삼업(三業)공양, 음식, 의복, 탕약, 방사(房舍) 등을 올리는 것을 사사(四事)공양이라고 한다. 또한 공양은 중생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께서도 중생들의 깨달음을 위해 늘 법(法)공양을 베푸신다. 부처님께서는 공양 중에서도 법공양이 으뜸이라 하셨다.


3 불교의 명절의례


1 5대 명절


<부처님 오신 날>


음력4월8일은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날이다. 이 날은 전국의 사찰에서 부처님 오신 날을 봉축하며 법요식을 봉행 한다. 법요식 가운데는 욕불 의식이 있는데 부처님이 탄생하신 것을 축복하며 향탕수로 목욕시키는 의식이다.


이 의식은 아기 부처님이 탄생하셨을 때 아홉 마리 용이공중에서 향기로운 물을 솟아나게 하여 신체를 목욕시켰다는 데서 유래한다. 그 순서를 보면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탄생불을 불단에 모시고 룸비니 동산의 화원을 상징하는 꽃바구니를 만들고 향탕수 즉, 감로다를 준비해서 비밀스럽게 목욕시킨다. 이 의식은 큰스님을 증명법사로 모시고 비밀스럽게 행했던 것인데 요즘은 대중화 되어 스님과 신도가 함께 욕불식에 참석해서 정수리에 향탕수를 부으며 공덕을 쌓는 풍속으로 변하고있다.


또 연등회는 부처님 당시에 빔비사라왕이 불전에1만 등을 켜서 공양한 예가 있고, 가난한 여인이 한 등을 켜서1만 등을 능가하는 정성을 보이기도 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촛불이 자기 몸을 태워 세상을 밝히듯이 등을 켜는 이유도 가정과 사회, 세계를 밝히겠다는 서원의 발로인 것이다.


이 연등법회는 ≪삼국유사≫ 김현감호조에 초파일부터 보름까지 경주의 남녀가 다투어 탑돌이를 한 기록에서 전통문화행사로 치루어 졌음을 알 수 있다. 스님을 따라 염주를 들고 탑을 돌면서 염불을 하고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고 자신의 소원을 빌며 등을 밝히고 극락왕생을 기원하였다. 이 의식은 꼭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국태 민안과 개인의 평안을 바라는 뜻에서 일반 민속화 되었던 것이다.


<출가하신 날 - 출가절>


음력2월8일은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날이다. 모든 중생을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건지시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이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버리고 왕궁을 떠나 출가하신 날로서, 불자들은 부처님을 본받아 상구보리하화 중생의 보살이 되겠다는 서원을 세우며 기념법회를 가진다.


<깨달음을 이루신 날 - 성도절>


음력 12월8일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성취하신 날이다. 이날을 기념해 선방의 수행자들은 일주일간 철야 용맹정진을 하며, 일반 사찰에서도 발심 정진하는 철야법회를 갖는다. 부처님께서 행하신 수행을 본받아 불자들은 부처님처럼 생사의 고해에서 벗어나 열반을 얻어 일체중생을 교화하고 불국정토를 건설하겠다는 서원을 세우며 기념법회를 가진다.


<열반에 드신 날 - 열반절>


음력2월15일은 부처님께서 일체의 번뇌를 끊어 열반에 드신 날이다. 부처님의 열반은 이 세상의 모든 번뇌를 확실히 끊었다는 점에서 반열반이라고도 한다. 즉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교화하시던 시기는 아직도 인연의 꺼풀인 육체를 지니신 단계이지만, 그 꺼풀조차 벗었다는 점에서 깨달음의 큰 완성으로 보는 것이다. 불자들 또한 몸을 바르게 하고 노여움을 참고 악심을 버리고 탐욕을 버리고 열반의 경지를 성취겠다 는 서원을 세우며 기념법회를 가진다.


<우란분절 - 백중>


음력7월15일은 여름안거 해제일이며 백중날이다. 백중은 과일과 음식 등 백 가지를 공양한 백종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선방에서는 하안거 동안 정진하면서 생긴 스스로의 허물을 대중 앞에 사뢰고 참회하는 자자(自恣)를 행하며, 불자들은 선망부모를 천도하는 우란분절 법회를 가진다.


이 우란분절 법회는 안거수행 대중에게 공양을 올린 공덕으로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제한 목련존자의 효행에서 비롯되었다. 목련존자가 신통력을 얻은 후천안으로 어머니를 찾아보았더니 어머니가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고통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머니를 구제할 방법을 부처님께 여쭈었더니 그때에 부처님은 지금 살아 있는 부모나7대의 선망부모를 위하여 하안거 해제일에 음식, 의복, 등촉, 평상 등을 갖추어 시방의 고승 대덕들에게 공양하면 그 공덕으로 지옥의 고통에서 구할 수 있다고 하여 그대로 행한 데서 유래한다. 조선시대에도 음력4월 초파일과 백중을 일년 중 가장 큰 행사로 여겼다.


민간에서는 이 날이 고된 농사를 끝내고, 벌이는 칠월의 세시명절이다. 세벌 김매기인 만두레를 끝낸 다음 벌이는 농민 및 머슴들의 대동 굿으로서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최대 축제일이었다. 불자들은 한여름의 풍성한 과일이나 햇곡식을 들고 절을 찾아 스님들께 공양하거나 조상천도를 위한 기도를 한다.


2 그 밖의 명절의례


불교가 이 땅에 전래된 지1, 600여년이 넘었다. 그 기간동안 불교는 민족과 영욕을 함께해 왔으며, 민속의 많은 부분을 불교의식 속에 받아들였다. 그래서 어떤 경우는 전통민속과 불교행사가 서로 구별되지 않을 정도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민속명절을 하나의 의례로 정리하여 지켜가고 있다.


정월은 새해의 풍요와 안정을 희구하는 새로운 출발의 시기이면서 동시에 쉬면서 다가올 농사일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정월에 사찰에서는 마을 주민들과 더불어 여러 가지 행사를 했다. 즉 마을을 지켜준다고 믿어온 장승이나 서낭당, 당산 거목, 국사당의 제사에 참여하거나, 절 입구의 서낭이나 장승 앞에서 원앙재(연말), 성황제(연초)를 지내 질병을 막고 절의 융성을 기원하기도 했다. 또는 신년 첫 법회를 사찰의 대중스님들과 불자들이 함께 지내며 일년의 평안을 발원하기도 한다. 이 법회를 통알(通謁) 혹은 세알(歲謁)이라고 하는데, 석가모니부처님을 비롯하여 삼보와 호법신중, 그리고 인연 있는 일체 대중에게 세배 드리는 의식이다.


2월에는 연등놀이가 유명했으나 요즘은4월 초파일 연등행사로 바뀌었다. 등은 각종 동식물의 형상을 본떠 만든 것 이외에도 일월등, 종등, 북등, 칠성등, 오행등 등의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이 연등행사를 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 될 정도로 장엄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양력2월4일이나5일에 돌아오는 입춘에는 홍수, 태풍, 화재의 세 가지 재난인 삼재(三災)를 벗어나게 하는 삼재풀이를 하고 일년 내내 풍요로움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그 외에도 삼월 삼짇날 불공, 단오, 칠석 등 각종 민속절기마다 절에서는 불공과 기도를 올리며, 양력 12월22일이나 23일 돌아오는 동지에는 붉은 팥죽을 쑤어 먹으며 기원하기도 한다.


민족의 세시풍속을 불교가 받아들여 불교 명절화 된 것은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민중들의 소망을 받아들여 고통을 함께 나누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므로 불교가 민간신앙을 수용, 전승하며 발전시켰기 때문에 민중과 함께 가꾸어 나가는 민족종교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4 가정신행


가정은 우리들이 태어나고 성장하며 인격이 성숙해가는 곳이고, 인류사회에 봉사하기 위한 기초적인 장소이다.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조건 없이 베풀고 돕는 기본적인 보살의 생활을 배우는 곳이며, 가족에서 출발하여 일가 친척과 이웃에게 연결되는 출발점으로 최상의 교육장이기도 하다. 사회생활을 위한 기능과 지식은 학교에서 얻을지라도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덕성과 지혜 품성은 가정교육에서 길러지게 된다. 진리의 가르침에 기초한 훌륭한 가정에서 재능과 인격의 원만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불자의 가정은 항상 부처님의 크신 자비를 생각하는 곳이어야 한다. 자식은 부모님을 부처님처럼 받들고, 부모는 자녀들이 지극히 높은 덕성과 아름답고 밝은 지혜와 큰 복을 가지고 태어난 것을 믿으며 사랑하고 존중하며 키워야 한다.


그리고 가정은 수행 도량이 되어야 한다. 자기 생명을 참답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수행이라면 살아 있는 모든 시간은 바로 수행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재가신자들이 오로지 수행만을 위해 출가한 스님들처럼 수행하기는 어렵다고 할지라도 하루 하루를 경건하게 보내고 수행자와 같은 정신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자질과 성품이 다르다. 상근기에게는 참선, 중근기에게는 경전을 읽는 간경, 하근기에게는 불보살의 명호를 지성으로 외우는 염불을 각기 적합한 수행으로 권한다. 수행법은 자신의 성품에 맞게 선택하여야 하며, 무엇보다 꾸준히 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좋다. 혹은 기도와 절, 참회와 발원도 불자들이 가정에서 행할 수 있는 좋은 수행법이라 하겠다.


하루 중의 수행법으로는 단순하게 일정한 시간을 정해108배를 한다든지, 염불을 한다든지, 경전을 읽는다든지 하는 것도 좋지만, 이러한 수행 자체가 초심자에게는 맹목적, 의무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일정한 순서에 따라 진행하는 것이 좋다 .


대략 집에서는 입정, 삼귀의, 독경, 기도발원, 사홍서원의 순서에 따라 진행하면 된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인 새벽의 수행은 그날 하루를 즐겁고 보람되게 하며, 하루를 정리하는 저녁의 수행은 하루를 돌이켜 반성하며 더 나은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


또한 수행시간만이 아니라 평소의 모든 일, 모든 사람에 대해 언제나 육바라밀행을 실천하도록 자신의 생활을 가다듬는다면 매일매일의 생활은 복된 생활로 바뀔 것이다.


불자들의 가정신행은 항상 기도하는 것이어야 한다. 중생들은 지은 업장이 두텁고 복덕이 엷어 하는 일이 뜻대로 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온갖 장애와 역경을 당하기도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혜와 복덕이 구족한 불 보살님께 의지해 가피력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기도는 일방적으로 어떤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기만 하는 기원이 아니라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스스로 어떻게 하겠다는 서원적 발원이어야 한다. 기도는 찬탄과 참회, 감사와 발원을 구체화시키는 고도의 수행 방법인 것이다.


5 역경을 이겨내는 불자의 자세


세상을 살다 보면 자기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만나기도 한다. 그 때 중생은 어쩔 수 없이 불 보살님의 가피력에 의지하게 된다. 불 보살의 가피는 일체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원력을 바탕으로 수많은 생을 두고 자신을 희생해온 공덕으로 성취된 것이기 때문에 중생들이 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모두를 구원하는 능력이 있다. 지옥중생조차 모두 구원하겠다는 지장보살의 서원이 있고, 자신의 이름을 한번이라도 부르면 모두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태어나게 하겠다는 아미타부처님의 서원도 있다. 항상 자애로운 어머니 같은 모습으로 중생을 위로하는 관세음보살과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을 치유하는 약사여래도 있다. 이러한 제불 보살님의 가피력에 의지하여 중생 하나하나는 스스로가 처한 절망적인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에서 끝난다면 불교인이 세상 사람들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다. 그러므로 바른 불교인은 불 보살님의 본원 가피력에 힘입어 스스로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듯이 스스로 중생구제의 큰 서원을 세워 일체중생에게 그 공덕을 회향해야 한다.


또 세상 사람들은 모든 어려움과 역경을 자기 탓이 아닌 남의 탓으로 돌린다. 그래서 남을 원망하고 세상을 한탄한다. 그러나 불교인은 우리 몸에 나타나는 재난이나 환경이 모두 내 마음의 상태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고난을 당하면 무엇보다도 자기자신이 지은 허물임을 알고 깊이 참회해야 한다. 그 허물은 금생의 것일 수도 있고 전생의 것일 수도 있다.


또한 고난을 당해서도 절망에 빠질 필요가 없다. 역경은 과거에 지은 잘못의 과보가 현재에 나타남으로써 소멸되는 것이니 잠복 중에 있던 나쁜 원인이 소멸되면 다행스러운 일이며 새로운 희망이 싹틀 전조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불자는 고난 앞에서도 오히려 감사하고 불평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용기를 잃지 않으며 극복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지은 바 원인이 있어서 고난이 나타나는 것처럼, 희망은 오늘 새롭게 씨를 뿌림으로써 커 가는 것이므로 고난을 당해서도 새 희망을 일으키고 용맹 정진하여 새로운 전환의 계기를 만드는 것이다. 불자들은 고난과 역경을 당해서도 좌절하지 않고 당당하게 일어서 끊임없이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켜 운명 그 자체를 바꿔 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운명은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 보왕삼매론


불자의 마음 자세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 ꡐ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ꡑ 하셨느니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 ꡐ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ꡑ 하셨느니라.


공부하는데 마음에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말라.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치게 되나니,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 ꡐ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ꡑ 하셨느니라.


수행하는데 마(魔) 없기를 바라지 말라.

수행하는데 마가 없으면 서원이 굳건해지지 못하나니,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 ꡐ모든 마군을 수행의 벗으로 삼으라ꡑ 하셨느니라.


일을 도모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일이 쉽게 되면 뜻이 경솔해지니,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 ꡐ여러 겁을 겪어서 일을 성취하라ꡑ 하셨느니라.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말라.

내가 이롭고자 하면 의리를 상하게 되나니,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 ꡐ순결로써 사귐을 길게 하라ꡑ 하셨느니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기를 바라지 말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면 마음이 스스로 교만해 지나니,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 ꡐ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로써 원림(園林)을 삼으라ꡑ 하셨느니라.


공덕을 베풀려면 과보를 바라지 말라.

과보를 바라면 도모하는 뜻을 가지게 되나니,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 ꡐ덕 베푸는 것을 헌신처럼 버리라ꡑ 하셨느니라.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말라.

이익이 분에 넘치면 어리석은 마음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 ꡐ적은 이익으로써 부자가 되라ꡑ 하셨느니라.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

그래서 성현이 말씀하시되 ꡐ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써 수행하는 문을 삼으라ꡑ 하셨느니라.


이와 같이 막히는 데서 도리어 통하는 것이요,

행함을 구하는 것이 도리어 막히는 것이니, 이래서

부처님께서는 저 장애 가운데서 보리도를 얻으셨느니라.

저 앙굴마라와 제바달다의 무리가 모두 반역의 짓을 했지만 우리 부처님께서는 모두 수기를 주셔서 성불하게 하셨으니, 어찌 저의 거슬리는 것이 나를 순종함이 아니며 제가 방해한 것이 오히려 나를 성취하게 함이 아니리요.

요즘 세상에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만일 먼저 역경에서 견디어 보지 못하면 장애에 부딪칠 때 능히 이겨내지 못해서 법왕의 큰 보배를 잃어버리게 되나니, 이 어찌 슬프지 아니하랴.


2 병자를 위하여


구병시식(救病施食)


구병시식은 병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사찰에서 행하는 일종의 재례의식이다. 시식이란 업력에 의하여 고통 받는 영가(영혼)들에게 법식을 베풀어 천도하는 의식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우리 몸에 발생하는 병의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보는데, 하나는 현세실조병(現世失調病)이라 하여 음식이나 몸과 마음가짐을 조절하지 못해 생기는 병이고, 두 번째는 선세행업병(先世行業病)이라 하여 과거에 저지른 온갖 악업의 결과가 현세의 질병이라는 과보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특히 누군가를 몹시 괴롭히거나 미워할 경우 그 업의 힘이 잠복해 있다가 현세에 자기 몸의 병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 몸이 병들었을 때 육체적인 원인을 찾아 물리적으로 다스리는 현대의학적 처방도 당장은 중요하지만, 자신의 업에 대한 참회와 더불어 주변의 모든 원한관계를 해소하고 고통 받는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그 공덕으로 병고의 원인을 해소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구병시식은 육체와 정신이 따로 떨어져 있는 별개의 실체가 아니라 서로 유기적인 연관관계 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현상이라는 연기론적 사고를 바탕으로 복덕을 지어 병고와 액운을 이겨내려는 데에 본래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아난존자에 의해 비롯된 불교의 시식은 배고픈 귀신들을 법식을 통해 굶주림을 채우고 불법에 귀의하여 법문을 듣고 하루 속히 안락국에 태어나라는 천도 의식이지, 굿이나 귀신을 겁주어 쫓아내려는 미신적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을 만족시켜 원한의 마음을 풀게 하는데 있다.


구병시식의 절차는 먼저 삼귀의를 하고, 대자대비한 관세음보살께 귀의하여 그의 위신력으로 책주귀신영가를 천도한다.


≪천수경≫을 외우고 멸악취진언을 하여 악취로부터 아귀들을 불러내어 병자의 내력을 유치(由致)로 설명한다. 설단에는 말 마(馬)자 와 금은전(金銀錢)각 일곱 글자와 남귀여귀(男鬼女鬼) 2개를 써서 붙이고 책주귀신영가 위패를 모신 다음, 일곱 접시의 밥과 찬, 그리고 삼색 과일 등 제반 음식을 차려놓고 간절하게 시식을 베푼 다음 문 밖에 나가서 봉송한다


영혼에게 드리는 향화청가영(香花請歌詠)을 살펴보면,


빚진 사람 원수가 되어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 그치지 못해

지금 시식을 베풀어 법식을 제공하니

무릇 깨달아 원한을 푸소서


로 되어 있어 구병시식이 전생의 빚을 갚고 원한을 풀어 현재의 병고를 이겨내는 의식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불자들이 지켜야 할 것은 시식, 특히 구병시식은 일반 불자들이 행할 수 있는 의식이 아니다. 수행공덕이 높으신 스님에 의하여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6 이 세상의 인연이 다하여


사람을 육체로만 판단할 때 사후에는 아무 것도 없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지수화풍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진 이 육체는 미혹한 중생의 마음 상태가 인연이 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비록 인연이 다하여 육체는 없어진다고 해도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하는 한 여전히 미혹한 상태는 남는 것이다. 그렇지만 미혹한 마음도 본래 없는 것이므로 절대적인 깨달음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 또한 없는 것이다. 중생은 미혹 상태에 집착하여 육체를 잃은 후에도 여전히 어리석게도 미혹의 세상을 헤매이다 미혹된 몸을 받는다. 이것이 윤회(輪廻)다. 생전이냐 생후냐 하는 것은 오직 육체를 보느냐 안 보느냐의 차이뿐이다.


윤회하는 영혼(識)을 중유(中有 또는 中陰)라고 부르는데, 아직 다음 생을 받지 못한 상태를 말하며, 부처님의 법을 설하여 극락으로 인도하는 천도의식은 바로 이 단계에서 행해진다.


1 불교의 장례


죽은 이를 위해 장례 전에 행하는 의식을 시다림(尸陀林)이라고 한다. 원래 인도의 시타림(sita-vana)에서 유래한 말로, 시체를 버리는 추운 숲(寒林)이라는 뜻이다.


이 말이 우리 나라에서는 망자를 위해 설법하는 것으로 뜻이 변했다. 시다림 법문은 신라시대 이후로 관습화 되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성행하였고 오늘날은 불교장례법으로 일반화되었다.


사람이 죽으면 망자에게 <무상게>를 일러주고 입관하기 전에 목욕의식을 행한다. 경은 보통<<아미타경>>, ≪금강경≫, ≪반야심경≫ 등을 독경하고 서방 극락세계에 계시는 아미타 부처님을 부르며 발원한다. 발원의 대상은 동て서て남て북て중앙에 있는 화장세계 노사나불과 동방 만월세계 약사불,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남방 환희세계 보승불, 북방 무우세계 부동존불이다. 목욕을 시키고 수의를 입히는매 단계마다 영가를 위한 법문이 있게 되는데, 이는 부처님께 귀의하여 좋은 곳으로 인도하여 천도하는 의미가 있다. 장례절차가 끝나면 발인을 하게 되는데, 임시로 단을 만들고 제물을 정돈한 후 영구를 모시고 나와 제단 앞에 모신다. 법주가 거불과 청혼을 한 다음제문을 낭독한다. 법주의 법문이 끝나면 대중이 다함께≪반야심경≫을 독송한 뒤 추도문을 낭독하고 동참자들이 순서대로 분향한다. 발인이 끝나면 인로왕번을 든 사람이 앞장서고 명정, 사진, 법주, 상제, 일가친척, 조문객의 순으로 진행한다.


불교의 전통적인 장례법은 화장이다. 이를 다비(茶毘)의식이라고도 한다. 나무와 숯, 가마니 등으로 화장장을 만들고 관을 올려놓은 후 거화편을 외우고 불을 붙인다. 불이 붙은 다음에는 미타단을 신설해서 불공을 올리고 영가를 일단 봉송한 뒤에 위패를 만들어 창의(唱衣)한다. 시신이 어느 정도 타면 뼈를 뒤집으며 기골편(起骨篇)을 하고 완전히 다 타서 불이 꺼지면 재 속에서 뼈를 수습하며 습골편(拾骨篇)을 한다. 뼈를 부수면서는 쇄골편(碎骨篇)을 하고, 마지막 재를 날리면서는 산골편(散骨篇)을 한다.


유교 풍습의 여파로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화장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부모로부터 받은 사대(육체)는물질(흙, 물, 불, 바람)의 인연이 화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죽은 후에까지 육체에 집착하여 화장보다 매장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진정으로 고인을 위한다면 화장 후 납골을 수습해서 본처(본래 고향)로 흩어주고 절에 모셔서 천도재를 잘 지내드리면 좋을 것이다. 천도재를 올리고 난 다음에는 위패를 납골당에 모시든지 아니면 가까운 곳에 성스러운 가족탑을 세워서 모시는 것이 좋다.


요즘은 의학이 발달하여 병들어 아픈 사람도 다른 사람의 건강한 장기를 이식 받으면 생명을 연장할 수 있게 되었다. 보살은 중생을 위해 피와 살을 모두 다 준다고 하였는데, 하물며 죽은 이후에 이 육신에 대해 무엇을 아끼고 소중히 여길 것인가. 살아 생전에 장기기증 서약을 하고 다른 이의 생명을 살리는데 나의 장기가 쓰여진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불자들은 자신과 남이 더불어 사는 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


2 나와 남을 위한 공덕-재(齋)


재(齋)는 깨끗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며 공덕을 닦는 의식이다. 재의 어원은 산스크리트어인 우포사다(uposadha)에서 유래되었는데 스님들의 공양의식을 뜻한다. 대개 스님들에 대한 공양은 집안의 경사나 상사(喪事), 제사 때에 이루어졌으므로 나중에는 제사의식으로까지 전환되었다. ≪목련경≫에는 공양을 받는 스님들의 숫자에 따라 오백승재의 명칭이 나오고, 중국에서는 양 무제가 사람의 숫자에 제한하지 않고 누구나 자유로이 동참할 수 있는 무차대회(無遮大會)를 열었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반승(飯僧)이라는 명칭으로 행해졌다.


원래 이 재는 스님들에게 공양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간단히 불전의식을 집행하고 공양에 임했으나 그것이 점차 큰 법회의식으로 되어 호국법회의 형식으로까지 발전했다. 나중에는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을 위해 베풀어지는 일체의 행사를 통칭하는 말로 되었다. 요즈음은 스님들에 대한 공양부터 기도, 불공, 시식, 제사, 낙성, 기타 법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재라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3 천도재


자손이 조상을 돌보는 것은 인간의 근본을 귀중히 여기는 아름다운 풍습이다. 천도재는 망자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기 위한 의식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이 지극한 정성으로 재를 지내 죽은 사람이 생전에 지었던 모든 업을 소멸하고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바라는 의식이다. 그 내용은 영가에게 <무상게>를 일러주어 죽음이라는 현실을 만물 변화의 자연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영가로 하여금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라 원래의 청정한 마음을 되찾도록 인도하고 극락세계에 왕생할 것을 권하는 내용이다. 또한 영가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재에 참석하여 공덕을 짓는 이들에게도 생사의 슬픔을 승화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이 재의 공덕은7분공덕이라고 하여 망자와 동시에 재를 올린 이에게도 회향된다.


재의 진행은 주로 도량장엄을 하고 시련 대령 관욕 불공시식 등으로 행해지며, 그 종류도 49재, 100일재, 기제(忌祭), 소상, 대상 등의 정기적인 천도재와 수륙재, 필요에 따라 시설하는 부정기적인 천도재 등이 있다. 정기적인 재의 경우 돌아가신 날부터 시작하여 매 7일마다 계속하여 49일 되는 날까지의7번과 100일재, 소상, 대상을 합하여 10번을 하는데, 이는 명부의 시왕(十王)에게 심판을 받는다는 명부신앙에 근거한 것이다.


의식을 행하는 절차에 따라 상주권공재(常住勸供齋), 각배재(各拜齋), 영산재(靈山齋) 등의 몇 가지로 나뉜다. 가장 일반적인 것이 상주권공재이고 여기에 명부신앙의례를 첨가한 것이 각배재이며, 법화신앙을 가미한 것이 영산재이다. 절차는 시련(侍輦)에서 영가를 맞아들이고, 대령(對靈)에서는 영가를 간단히 대접하여 예배케 한다. 관욕에서는 불보살님을 맞이하기 위하여영가를 목욕시키고 신중작법으로 모든 신중을 맞아들인다. 상단권공에서 불단에 공양 드리고 법식을 베풀어 받게 한다. 그리고 봉송편에서 불보살을 모시고 영가를 봉송하고 마치는데 불자는 망자를 위한 기도로서 최소한 49재만이라도 지내야 할 것이다.


4 수륙재


수륙재(水陸齋)란 물이나 육지에 있는 외로운 귀신이나 배고파 굶주리는 아귀에게 공양하는 법회이다. 양나라 무제의 꿈에 어떤 스님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ꡐ사생육도(四生六道)의 중생들이 한없는 고통을 받고 있는데 어찌하여 수륙재를 베풀어 그들을 제도하지 않는가? 이들을 제도하는 것이 모든 공덕 중에서 으뜸이 된다ꡑ고 하자 지공선사에게 부탁하여 수륙재를 행한 것이 그 시초라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 광종 22년 수원 갈양사에서 혜거국사가 처음 시행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정책으로 불사에 어려움이 많았으나 태조는 진관사(津寬寺)를 나라의 수륙재를 여는 사사(寺社)로 지정하고 견암사, 석왕사, 관음굴 등에서 고려 왕씨들을 위한 수륙재를 베풀었다. 이 수륙재는 많은 물자와 인원이 동원되는 행사로서 국행(國行)수륙대재라고 할 정도로 국가적인 지원으로 진행되었다.


5 영산재


영산재(靈山齋)란 영축산에서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의 모습을 이 세상에 재현한 의식이다. 즉 온 세계 모든 성현들과 온 세계 스님들을 청하여 봉양하며 법문을 듣고 시방의 외로운 혼령들을 천도하고 무주고혼 영가들에게 장엄한 법식을 베풀어 극락왕생하도록 하는 의식이다.


먼저 도량을 장엄하는데 영산회상을 상징화하여 법당밖에 괘불을 시설하고 의식 도중에 범패 등의 불교음악을 공양하여 장엄한다. 단의 구성은 법당과 같이 상단은 괘불 앞에 설치하고 향, 차, 꽃, 과일, 등불, 쌀 등을 공양하고, 중단은 신중단으로, 하단은 그날의 영혼에게 제사 드리는 영단으로 구성한다. 절차는 49재 때와 마찬가지로 시련에서 시작하여 의식단 앞에 이르고 잠시정좌한 다음 각단마다 권공예배를 하고 축원을 하고 영단에 이르러 시식을 하고 회향하게 되는데 의식을 맡은 스님들을 선두로 참가한 대중이 도량을 돌면서 회향한다. 이 의식은 자작자수(自作自修)라는 수행과 기원, 회향, 추선공양이라고 하는 교리적 발전과 함께 발전된 의식이며, 우리 나라 전통음악과 무용이 한데 어우러져 있고 또한 민간신앙까지 수용한 불교의식이자 국가가 지정한 무형문화재(영산회상곡)이기도 하다.


6 예수재


예수재(豫修齋)란 살아 생전에 미리 수행과 공덕을 닦아두는 재의식로서, 속설에는 자신의 49재를 미리지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다른 말로는 역수(逆修)라고도 한다. 49재는 순수하게 죽은 이를 위한 재이나, 예수재는 살아 있는 이가 자신의 사후를 위해 미리 준비함으로써 살아서나 죽어 행복을 함께 추구하는 아름다운 의례이다.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참회의 공덕으로 업장을 소멸하고, 지계와 보시로써 스스로 내생의 복락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경전을 독송하여 해탈과 열반의 길에 들어서고자하는 것이며, 불보살님과 명부시왕을 비롯한 많은 성현들에게 공양을 올려 은혜를 갚고자 하는 것이다.


불보살님과 호법신중의 가피력 아래 스스로의 참된 수행과 공덕으로 자신의 미래를 닦아나가는 의례인 예수재는 불교신앙의 전통을 대중과 함께 구현하고있다는 점에서 뜻 깊은 의례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