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 **/백두대간Ⅱ(終)

[12차] 화령재<-봉황산<-비재<-못재<-갈령(역방향).

雪松 2011. 2. 12. 18:34

백두대간 왕복종주(北進)12차/봉황산 구간.

 

 

제12차 : 화령재<-봉황산<-비재<-못재<-갈령(역방향)

 

 

*일시 : 2011년 2월 13일(일요일)   

 

 * 날씨 : 맑음. 오후 연무와 박무가 많아짐/이침 마지막 늦추위(아침기온 영하10도)/오후 포근해짐.

 

 * 누구와? : 대자연 산악회 10차(8차) 백두 대간 종주팀과 함께..

 

*코스 및 거리 : 총 산행거리 12.71km(접속거리 1.3km별도)  

 

      갈령-(접속거리)->갈령삼거리-(4.15㎞)->비재 -(3.85㎞)->봉황산-(4.71km)->화령

    

 * 누적거리 : 총734.65km중/ 157.96km진행.

 

구간 진행시간(총 5시간 50분/접속거리 및 휴식시간 포함)

    ○ 09:20 - 갈령(443m)

    ○ 09:56 - 갈령삼거리(721m).

    ○ 10:25 - 충북알프스 갈림길 삼거리

    ○ 10:35 - 못재(655m)

    ○ 11:40 - 비재(320m)/중식 20분.

    ○ 13:40 - 봉황산(740.8m)

    ○ 14:22 - 576봉(산불감시초소).

    ○ 15:10 - 화령(320m)

     

[산행기]

....................

 

 

*개념도

 

  

 

 ▲ 진행개념도.

 

 

 

 

 

 ▲ 09시 20분./ 갈령.

 

 

 

 

 

 

 

▲ 지금은 입산금지 기간인데..../그래도 가야 한다.

 

 

 

 

 

 ▲  갈령삼거리로 가는 도중 만난 기암.

 

 

 

 

 

 ▲ 조망바위에서/ 갈령 삼거리는 721봉 정상이다.

 

 

 

 

 

 ▲ 조망바위에서/북으로 속리산이 보인다.

 

 

 

 

 

▲ 조망바위에서/오늘의 최고봉 봉황산이 미리 얼굴을 내밀었다.

 

 

 

 

 

 ▲ 갈령삼거리./ 오늘 가야할곳은 남쪽방향이다.(북으로는 속리산 방향).

 

 

 

 

 

▲ 이해를 돕기위한 위성사진(갈령에서 비재까지).

 

 

 

 

 

 

▲ 충북 알프스 갈림길 삼거리.

 

 

 

 

 

 ▲ 동쪽방향(진행방향 좌측)으로 보이는 두리봉과 대궐터산.

 

 

 

 

 

▲ 못재 도착하기전 헬기장(680봉 정상).

 

 

 

 

 

 ▲ 10시 35분/ 못재.

 

 

못제"와 견훤에 얽힌 전설./표지판의 내용.

상주에서 후백제를 일으킨 견훤은 주변 지방을 장악해 나갔다.

이때 보은군의 호족인 황충장군과 견훤은 세력 다툼을 하며 거의 매일 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매번 싸움에서 황충은 패하고 만다.

이에 황충은 견훤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부하를 시켜 견훤을 미행했다.

황충의 부하는 견훤이 못제에서 목욕을 하면 힘이 난다는 것을 알아내 이 사실을 황충에게 알렸다. 

황충은 견훤이 지렁이의 자손임을 알고 소금 삼백 가마를 못제에 풀었다.

그러자 견훤의 힘은 사라졌고, 마침내 황충이 승리했다.

 

 

 

 

 ▲ 동으로 49번 지방도(갈령) 뒤로 보이는 두리봉과 대궐터산.

 

 

 

 

 

 ▲ 충북 알프스의 시발점 "구병산"의 산줄기.

 

 

 

 

 

▲ 가야할 산줄기(비재에서 봉황산까지).

 

 

 

 

 

▲ 11시 40분./해발 320미터의 비재에 내려서다.

 

 

 

 

 

▲ 이해를 돕기위한 위성사진(비재에서 화령까지)

 

 

 

   

 

 

 

 ▲ 오늘의 최고봉 봉황산 정상(740.8M)

 

 

 

 

 

 ▲ 봉황산 정상에서...

 

 

 

 

 

▲ 봉황산 정상에서 북으로의 조망

 

 

 

 

 

 ▲ 봉황산에서 동으로의 조망/ 상주의 명산들.

 

 

 

 

 

 ▲ 봉황산 정상에서 남쪽으로의 조망/화서면 일대와 가야할 산줄기.

 

 

 

 

 

▲ 산불감시초소(576봉).

 

 

 

 

 

 ▲ 지나온 봉황산/ 봉황산과 양쪽 산날개가 봉황처럼 생겼다?

 

 

 

 

 

 ▲ 화령까지는 25번 국도를 따라 마루금이 이어진다.

 

 

25번국도와 49번 지방도가 만나는 삼거리 교차점으로 내려선다.

49번 도로는 갈령과 속리산을 지나 괴산으로 연결되고, 25번 국도는 청주에서 보은, 상주를 지나고 대구로 넘어가는 도로다.

  

도로에 내려서면서 화령까지 300여미터정도를 도로를 따라 가야하는데, 평범한 이도로가 우리나라 국토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백두대간 길이고, 금강과 낙동강의 물줄기가 갈라지는 분수령이되는 곳이기도 하다.

 

 

 

 

 ▲ 도로로 내려온 대간 마루금.

 

 

 

 

 

 ▲ 15시 10분. / 화령.

 

 

 

 

 

▲ 화령 표석/신표석(좌), 구표석(우)

 

 

 

화령!!

화령현을 넘나드는 고개라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화령현은 지금의 상주군의 화서, 화북, 화동, 화남면을 합쳐진 조선시대의 고을 이름이었는데, 이곳 화령현을 넘나드는 고개라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불화(火)자를 써서 "화령"이라 했을까?

그 답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찾을 수 있다.

 

옛날 이곳은 신라와 백제의 접경지역이었던 곳으로 나즈막한 야산과 고개를 사이에 두고, 동으로는 신라가 그리고 서쪽으로는 백제가 이고개를 사이에 두고주도권 다툼을 위해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곳이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때의 흔적으로 백두 대간 분수령을 경계로 도계나 군계를 나누던 관습은 이곳에서는 적용되지 않고, 백두대간 마루금 서쪽(충청도)으로 깊숙하게 경상도 경계가 넘어와 있는데, 이것은 그시절(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경계가 지금의 경상도와 충청도 그리고 전라도의 경계로 굳어져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곳에서의 피(火)의 역사는 현대사에서도 이어진다. 6.25사변때 남한을 침공한 북한군이 파죽지세로 남한땅을 점령해오면서, 한국군은 최후의 보루로 낙동강을 뒤로 배수의 진을 치며 대한민국을 지키기위해 북한군에 맞써 싸우던 곳으로 이곳의 치열했던 전투를 현대의 역사는 "중화지구 전투"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화지구"라는 말이 나오는데 백두대간 길을 가면서 "화령"에 이어서 무심코 지나치지 말고 기억해야 할 내용이다.

 

 "중화지구"란 지금의 "경북 상주군"의 모동면과 모서면를 합쳐 과거에는 "중모현"이라 불렀고, 상주의 "화서,화북,화동,화남면"의 4개면을 합쳐 "화령현"이라 했는데, "중모현"의 "중"자와 "화령현"의 첫머리자인 "화"자를 따서 "중화지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이다

 

"중화지구"라 불리는 이곳은 속리산구간에서부터 남으로 추풍령에 이르기전 국수봉까지의 구간으로, 해발이 200~400여미터쯤되는  백두대간중 가장 나즈막한 구간을 이루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고원지대의 특성상 연중 평균기온이 평지보다 평균3~5도가 낮고 밤과 낮의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 또한 풍부하여 과수 농업이 많이 발달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 상주에서 생산되는 대표적인 이고장의 특산물로는 곶감과 포도등이 유명하다.